박처원씨 고문지시 시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근안(李根安.61) 전 경감의 고문과 도피 비호세력에 대한 검찰수사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카지노 업계 대부' 전낙원(田樂園.72)씨가 준 돈이 박처원(朴處源.72) 전 치안감에게 건네진 경위를 밝혀냈기 때문이다. 검찰은 또 朴전치안감에게 전달된 10억원이 수표가 아닌 예금통장과 도장이었음도 확인했다.

이근안 전 경감의 도피 비호세력을 수사 중인 '서울지검 강력부(文孝男부장검사)는 18일 김우현(金又鉉.65)전 치안본부장이 89년 당시 치안본부 대공1부장 구본우(具本禹)경무관을 통해 朴전치안감에게 10억원을 전달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김우현 전 치안본부장이 朴전치안감에게 돈을 건넨 목적 등을 밝히는 대목에 이르러선 여전히 답보상태다. 4년째 생사(生死)를 넘나들고 있는 金전본부장을 상대로 조사가 불가능한데다 중간에서 이를 전달한 당시 경찰 간부들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서다.

그러나 치안본부장이 전후 사정을 설명하지 않은 채 경무관에게 봉투 하나만 달랑 전달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朴전치안감도 구체적인 돈의 성격에 대해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 주변에선 경찰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말못하는 金전본부장에게 모든 것을 떠넘긴 채 관련자들이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검찰은 朴전치안감의 계좌추적을 통해 돈의 사용처를 밝히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그가 李씨에게 도피자금을 제공했는지, 제공했다면 1천5백만원 이외에 더 있는지를 입증해 보이겠다는 것이다.

한편 검찰은 李씨가 고문에 적극 가담한 사실을 상당 부분 확인했다. 李씨는 85년 전 민청련 의장 김근태(金槿泰)씨 수사과정에서 朴전치안감으로부터 직접 고문을 지시받았으며 朴전치안감도 지시 사실을 인정했다.

또 李씨는 86년 반제동맹사건의 수사팀장으로 朴충렬씨에 대해 '관절 뽑기' '날개 꺾기' 등의 고문을 하도록 부하직원을 지휘한 것과 83년 간첩자백을 강요하며 咸주명(68)씨를 감금 고문한 사실을 순순히 시인했다.

검찰은 납북어부 김성학(金聲鶴)씨 고문에도 李씨가 상당 부분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김성학씨 사건 이외에는 국내법상 공소시효(5~7년)가 이미 끝나 형사처벌이 어려운 상태다.

검찰은 "국제관습법에 따라 고문범죄의 공소시효를 배제해야 한다" 는 재야의 주장에 대해 법률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다.

김상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