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미래예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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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국작가 조지 오웰은 1940년대 후반 소설 '1984년' 을 썼고, 그로부터 약 3년 후인 50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소설 속에서 묘파한 전체주의의 악랄한 모습은 하나씩 현실로 재현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미래의 어떤 상황을 예측하고, 그 예측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예는 오웰의 경우뿐만이 아니다. 더 흥미로운 예도 많다.

작가 모건 로버트슨은 1898년 '타이탄 호의 조난' 이라는 소설을 발표했는데 그로부터 14년 후인 1912년 그 유명한 타이타닉 호의 조난사고가 발생했다.

소설과 실제 사고는 배의 이름도 비슷하고 첫 항해에서 비극을 당했다는 것도 같을 뿐만 아니라 배의 크기와 항로, 빙산(氷山)과 충돌했다는 사실도 정확하게 일치했다.

1972년 제임스 래시크는 '검은 유괴자' 라는 소설을 발표했는데 이 소설은 그로부터 2년 뒤에 발생한 명문 허스트가(家)의 상속녀 패트리샤 허스트 유괴사건과 정확히 일치해 미 연방수사국(FBI)이 래시크의 관련여부를 캐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문학이 현실상황과 무관할 수 없다면 그 예술형식을 통해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연히 맞아떨어진다면 작가의 예지(叡智)가 빛날 것이고, 맞지 않는다 해도 흉 잡힐 일이 아니다.

맞아도 그만 틀려도 그만인데 사람들이 작가의 정확한 미래예측을 마치 예언자의 신통력처럼 받아들이는 까닭은 미래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궁금증 때문이다.

미래예언이 하나의 '직업' 으로 정착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동양의 주역(周易)이나 서양의 점성술(占星術)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물론 맞힐 수도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20세기 이후에는 과학적 근거에 의한 미래예측이 정확도에서 앞설 것은 당연하다. 불과 한세기 전까지만 해도 결과적으로 틀린 미래예측이 난무했다.

20세기 초 미국 항공의 개척자인 윌버 라이트는 '인간은 1950년대 이후에나 하늘을 날 수 있을 것' 이란 틀린 예언을 했고, 미국 특허국장은 '이제 인간은 더 발명할 것이 없다' 고 인간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얼마전 미국의 한 연구기관은 21세기에 들면 암과 에이즈 등 불치병이 정복되리라는 보고서를 내놨고, 최근 한국과학기술평가원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도 '한국의 미래기술, 2000~2025' 를 내놓고 암은 2020년까지, 에이즈는 2011년까지 국내에서도 정복되리라 전망했다.

맞으면 좋고, 틀려도 그만인 미래예측이 아니다. 지금 이런 병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몇 년만 더 기다리면 된다는 희망을 가져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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