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붙은 이근안씨 수사] 10억 누가 줬나 더 윗선 개입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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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검찰이 박처원(朴處源.72)전 치안감의 서울 옥수동 자택에서 7억원이 입금된 통장을 발견하면서 이근안(李根安)전 경감의 고문 및 도피 비호세력에 대한 수사가 활기를 띠고 있다.

검찰은 朴전치안감에게 10억원이라는 거금이 건네진 점으로 미뤄 당시 경찰 수뇌부가 개입했다는 심증을 굳히고 있다.

朴전치안감은 "88년 12월 퇴직할 때 당시 경찰 고위간부로부터 10억원을 받아 연구소 운영경비와 생활비로 쓰고 남은 것"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朴전치안감이 운영한 '현대문화비교연구소' 는 퇴역한 대공경찰 10여명을 연구원으로 채용, 대공수사 기법 등을 연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구소의 성격에 미뤄볼 때 경찰이 조직적으로 움직여 10억원의 기금을 조성, '대공(對共)수사의 대부(代父)' 에게 위로금 명목으로 건넸을 가능성이 크다.

이 돈이 朴전치안감의 진술대로 독지가가 기부한 것인지, 경찰 자체적으로 모금한 것인지 여부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검찰은 朴전치안감이 이 돈 가운데 1천5백만원을 李씨 도피자금으로 떼준 것으로 보고 있다.

비록 朴전치안감이 "도피자금을 지원하지 않았다" 고 진술했지만 이는 경찰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계산된 진술로 보고 있다.

朴전치안감과 李씨의 관계가 돈독한 데다 李씨 부인이 어렵게 가정을 이끌고 있다는 사정을 알면서 외면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朴전치안감이 돈을 받을 당시 대공담당인 치안본부 5차장 등 경찰 수뇌부를 차례로 불러 10억원이 전달된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돈을 건넨 독지가가 실제 인물인지 여부를 밝히기 위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돈의 출처를 캐면 자연스레 李씨의 도피 비호세력까지 연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朴전치안감이 거금을 마련해준 경찰 수뇌부와 수시로 연락을 취하며, 李씨의 도피문제를 의논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검찰조사 결과 李씨는 2~3년 전까지만 해도 후배 경찰간부들에게 자문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朴전치안감에 대한 방문조사를 통해 김근태씨 고문을 지시한 혐의도 포착했다.

그는 고문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李씨에게 "어슬프게 하면 안될 것" 이라고 말했다. 李씨가 金씨를 고문할 때 신문실에 가서 목격한 사실도 인정했다.

검찰은 일단 朴전치안감이 李씨 도피와 고문사건에 관여한 사실을 확인한 만큼 앞으로는 '윗선' 을 밝히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당시 안기부 등 관계기관의 지시나 개입이 있었는지 밝히는 것도 당연히 수사대상이다.

그러나 朴전치안감은 "수뇌부와 관계기관에 보고한 사실이 없다" 고 단호하게 부인하고 있어 이 방어벽을 깨뜨리는 것이 급선무다.

김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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