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황운헌 '소목의 하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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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양달 밝은 곳에서, 어느, 대패질을 하다가, 종일 끌질도 하다가, 삼나무며 청솔잎 냄새도 맡고, 여울 물소리에 귀도 기울이다가, 속으로 들끓는 손바닥으로 어루만진 투박한 목각의 흔들림, 바람에 나부끼는 신의 속삭임같은 것.

껍질 벗는

나무 결의

말간 늪에

빛이

넘쳐흘렀다.

그런 빛의 해일에서 치솟아 소생하는 눈빛 염염한 새 한 마리. 어느덧 지는 해 너울너울 붉게 물든 산령 너머 사라지는 크낙한 새의 그림자. 그렇게 기우는 소목(小木)의 하루

- 황운헌(黃雲軒.68) '소목의 하루'

듬직한 사나이였다. 자질구레한 선악 따위 따지지 않고 그냥 술잔을 비우고 마는 사나이였다. 그의 앞에는 늘 바다가 있는 것 같았는데 그 바다 건너 멀리 남아메리카로 가서 사는 모양이다. 그런 사나이를 어찌 잊을세라, 나 여기 있어 하고 시를 요새 종종 보내오는 모양이다. 그전의 모더니즘 같은 게 싱거워졌던지 그 바닥의 모더니티 그것만으로 어느 하루를 극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목각, 나뭇결과 대패질 톱질 끌질 사이에도 여울 물소리가 끼어들고 무슨 속삭임도 끼어들고 또 어디를 바라보면 거기 새의 눈빛과 닿고 새 그림자와 함께 있기도 하는 그런 이름 없는 목수가 된들 얼마나 복되랴.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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