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장악 문건 수사 19일] 검찰 수사 소극적 사건핵심 접근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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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검찰이 문일현씨의 '하드 디스크' 복구에 실패함으로써 '언론장악 문건' 수사가 사실상 일단락되고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에 대한 조사만을 남겨놓고 있다.

◇ 수사〓수사 착수 19일째를 맞는 14일 현재 검찰은 鄭의원을 제외한 핵심 관련자에 대한 조사를 끝냈다. 검찰은 鄭의원에 대한 이강래(李康來)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명예훼손 혐의 고소가 접수된 지난달 27일 이후 본격 수사에 나섰다.

이후 정치권에서 잇따라 '작성자' 와 '전달자' 의 신분이 폭로되면서 수사는 급피치를 올리는 듯했다.

또 문서를 유출한 평화방송 이도준 기자의 행각이 밝혀지면서 鄭의원에게 문건을 전달하는데 중앙일보측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작성-수신-유출-폭로' 의 4단계 중 작성자와 폭로자는 확인된 상황이다.

그러나 어떤 배경에서 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에게 문건이 전달됐는지는 아직도 명쾌하지 않다. 유출 과정도 李기자가 절취.복사 사이에서 계속 오락가락해 아직 불분명하다.

문건개입 의혹을 받았던 '제3의 인물' 도 검찰 조사 결과 실체가 없는 것으로 결론내려졌다. 결국 검찰은 수사 초기 사건 관련자들에 의해 그려진 사건 구도를 뒤집지도, 결정적인 사실도 밝혀내지 못한 상태다. 이들의 주장을 반박할 만한 물증 확보에 실패한 탓이다. 사건의 배경을 알려줄 李부총재에게 보낸 사신을 아직도 검찰은 못찾았다.

文씨의 노트북도 하드 디스크가 바뀐 '빈 껍데기' 로 드러났다. 그 뒤 행방을 감췄던 원 하드 디스크를 검찰이 극적으로 입수, 기대를 모았으나 이 역시 불발로 그치고 말았다.

◇ 문제점〓검찰은 '언론장악 문건' 의 실체 규명에 소극적이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누누이 "사건 본질은 명예훼손 사건" 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국기를 흔드는 언론장악 음모가 시도됐다면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아울러 검찰은 "사신 내용이 사건 규명의 핵심" 이라고 강조해왔음에도 이를 찾으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받고 있다. 국정원에서 李부총재 사무실을 수색해 검찰로서는 결정적 증거포착의 기회마저 잃어버렸다.

◇ 전망〓이대로라면 관계자들의 주장에 따라 사건이 그려질 게 확실하다. 文씨가 독자적으로 문건을 작성해 李부총재에게 보냈고, 李부총재는 전혀 보지 못한 상태에서 李기자가 문건을 훔쳐 鄭의원에게 전달해 발표토록 했다는 게 그 요지다.

검찰은 이같은 구도를 깨부술 증거나 결정적 진술을 확보하지 못해 결국 단순한 해프닝성 사건으로 수사가 마무리될 전망이다.

이 경우 鄭의원은 잘못된 판단으로 李전수석을 작성자로 지목, 명예훼손을 한 것이 된다.

鄭의원 소환이 성사될지는 미지수지만 결국은 鄭의원과 문건을 훔친 李기자가 사법처리되는 선에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란 게 지금까지의 수사 흐름이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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