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도·토지대장에만 있는 '유령 땅' 전국에 381만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존재하지도 않는 땅 때문에 세금을 낸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됩니까?" 서울 중구 황학동에 대지 95평을 소유하고 있는 조건호(趙乾鎬.67.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씨는 매년 60만원대의 토지세를 내야 하는 게 너무나 억울하다.

趙씨 소유의 1352번지는 지적도와 토지대장에만 올라 있을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 땅' .

지난 67년 채무자로부터 이 땅을 받으면서 토지대장 등 서류상 아무런 문제가 없어 실제 토지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게 趙씨의 말이다.

이 일대 6천평 모두가 토지대장상 면적과 실제 점유면적이 일치하지 않는 지적불부합(地籍不付合)지역이다. 유령 땅만 11필지다.

그동안 세차례 구청에 진정서를 낸 趙씨는 "공무원들은 '법이 바뀌기 전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고 분통을 터뜨렸다.

◇ 실태〓 '지적도 따로 토지 따로' 인 지역은 전국적으로 2백5개 지구 (10필지 이상 큰 지역 대상)3백81만평. 서울만 해도 38개 지구 20만평에 이른다. ▶동대문구 신설.휘경.답십리.제기.이문.청량리동▶중랑구 망우.상봉.목동▶성북구 종암.삼선동▶강북구 수유.미아동▶은평구 진관외동▶영등포구 신길.대림동▶동작구 상도.흑석.노량진.신대방동▶관악구 신림.봉천동▶서초구 방배동 일대에 걸쳐 있다.

◇ 원인〓서울시 관계자는 "일제시대 토지조사사업 당시(1910~1924년)부정확하게 작성된 지적도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 이라고 말했다. 신도시 개발이나 낙후지역 재개발 등으로 지적도가 완전히 바뀐 곳을 제외하고는 당초의 지적도가 계속 이용되고 있다.

전쟁 등 사회혼란기를 거치면서 토지주들이 자신의 토지 위치와 면적을 정확히 측량하지 않고 제멋대로 집을 지은 것도 원인이다.

◇ 대책은 없나〓토지주들이 민사소송 등 개인적 방법으로 이웃 토지주와 토지 증감을 해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누가 누구의 땅을 얼마만큼 차지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고 토지주들의 이해차로 금전청산도 안된다.

행정자치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재조사를 하자' 며 96년 지적재조사법을 입법예고했으나 외환위기 이후 예산확보의 어려움으로 흐지부지된 상태다.

이에 서울시 등 지자체들은 단체장 직권으로 불부합 지역을 해결할 수 있게 재량권을 달라는 지적법 개정안을 행정자치부에 건의했다.

성시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