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씨 기자회견] "문건 못봤다…보고안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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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언론통제문건' 파동의 한복판에 서 있는 국민회의 이종찬(李鍾贊)부총재는 4일 곤혹스런 모습이었다.

그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미리 준비한 발언만 발표하고는 "검찰에 가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 며 쏟아지는 질문을 피했다. 그는 "검찰 조사 뒤 소상히 밝힐 계기가 있을 것" 이라며 자리를 빠져나갔다.

회견에서 李부총재는 이번 문건파동을 애써 '하나의 해프닝' 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문일현(文日鉉)기자가 팩스로 보낸 문건을 탈취당해 나는 보지도 못했다" 며 종전 변명을 되풀이했다. "그래서 이 문건으로 인한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며 '청와대 보고설' 등을 일축했다.

李부총재는 한나라당에 대한 공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이 문건으로 언론탄압.언론말살이란 모든 계획을 세웠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어불성설" 이라며 "다른 당에도 직.간접으로 관계된 사람이 있으면 자진 출두해 경색된 여야관계를 해소하기 바란다" 고 촉구했다.

문건을 처음 공개한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을 향한 발언이었다. 李부총재는 이어 한화갑(韓和甲)사무총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제서야 다소 긴장이 풀린 듯했다. 여권 실세인 한화갑 총장.김옥두(金玉斗)총재비서실장이 좌우에 앉아 李부총재를 거들었다.

"文기자와의 전화통화 녹취록이 있느냐" 는 기자들의 질문에 李부총재는 "자유롭게 얘기할 여유를 달라. 중요한 것은 실체적 진실" 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회견에 앞서 李부총재는 韓총장.金실장, '언론문건 관련 대책위' (위원장 朴相千총무)소속 의원들과 낮 12시부터 2시간30분 동안 사태수습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이영일(李榮一).김영환(金永煥).임복진(林福鎭)의원 등이 참석했다. 李부총재는 "검찰청사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조사받고 싶다" 고 강력하게 희망했으나, 당 관계자들은 "검찰청사로 가야 한다" 며 설득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회의는 또 李부총재의 검찰 출두 때 변호사 출신인 유선호(柳宣浩).박찬주(朴燦柱)의원 등을 동행시키는 등 당 차원의 배려를 과시했다. '李부총재를 팽(烹)하지 않겠다' 는 여권 핵심의 의중을 읽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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