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는 이종찬-문일현 커넥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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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던 언론장악 문건 파문이 마침내 사건의 실체와 성격을 송두리째 뒤바꿀 만한 분수령을 맞게 됐다.

검찰은 2일 이 문건의 작성자인 문일현(文日鉉)씨가 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에게 또다른 문건들을 전달했고 李부총재가 이를 보고받았다고 확인했다.

정상명(鄭相明) 서울지검 2차장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文씨가 다른 문건들도 전달해 李부총재가 보고받았다" 며 "문건의 내용이 무엇이고 모두 몇 건이나 되는지, 시점이 언제인지 등은 밝힐 수 없다" 고 말했다.

그는 "문건들의 전달 시기가 언론장악 문건을 전달한 지난 6월 24일 이전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그 이전에도 있었다" 고 했고 "그럼 그 이후에도 있느냐" 는 물음에 대해선 답변을 피했다.

검찰의 이런 발표가 갖는 의미는 막중하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있던 文씨와 李부총재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검찰 확인대로라면 두 사람은 정상적인 기자와 취재원 사이일 가능성이 별로 없다. 백번 양보해 둘 사이가 워낙 친밀하다보니 한 건 정도는 문건을 전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여러 건이면 상황은 달라진다. 文씨는 중앙일보를 휴직하고 베이징(北京)에 가 있는 동안 李부총재의 개인 참모 역할을 해온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자연스레 도출되는 것이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李부총재는 그동안 일관되게 "文씨의 편지와 문건 모두를 보지 못했다" 고 주장했다. 그의 비서진은 한 술 더 떠 "문건은 봤지만 편지는 못봤다" 고 했다.

그러나 여러 건의 문건 전달이 확인되면서 이런 주장에 대한 신빙성은 무너졌다. 다른 문건들은 보고받았지만 편지까지 포함된 언론대책 문건만은 못봤다는 주장은 누가 봐도 설득력이 없다.

국민회의 일부 의원들은 "그(언론장악) 문건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李부총재에게 보고하지 않은 게 아니냐" 고 주장한다.

만일 언론장악 문건 정도가 별 게 아니면 도대체 文씨가 보낸 다른 문건들은 얼마나 엄청난 내용을 담은 것인지가 의아스러운 지경이라는 것이다.

언론장악문건 파문은 점차 본질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의혹은 역시 李부총재가 언론장악 문건을 청와대에 보고했는지, 중앙일보 홍석현(洪錫炫)사장 구속 등 일련의 사태가 사전각본에 따라 진행됐는지 등이다.

검찰이 앞으로 파헤쳐야 할 부분이지만 과연 그럴 만한 의지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법조계 일부와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는 "이런 사건이야말로 특별검사가 다뤄야 한다" 는 목소리에 힘이 점차 실려가고 있는 것이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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