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요다-안조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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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굴욕도 참고 견뎠던 사무라이 끝내 '할복'

제5보(59~73)〓62의 빈삼각으로 뚫고 나올 때 요다9단의 입에선 저절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62같은 빈삼각으로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는 수는 그가 좋아하는 사무라이의 수가 아니다. 더구나 63의 한방에 68까지 포도송이로 뭉치는 모습은 대표적인 '추한 모습' 으로 미학을 추구하는 일본바둑으로서는 통곡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요다9단은 이미 이때 '할복' 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신인에게 이 지경이 된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조금 더 두어보기로 했던 것 같다. 판은 아직 넓고 좌상의 백집도 상당한 만큼 멀리 가보면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 또 대개의 청년들은 한동안 잘 두다가 갑자기 허망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요다는 아마도 이런 생각으로 62, 68의 굴욕을 참고 견뎠을 것이다.

70도 그런 수다. 머리 속은 온통 뜨겁고 엉망이 됐지만 집을 벌며 갈 때까지 가보려는 수. 이때 安5단의 손끝에서 71, 73의 두 수가 조용히 내려꽂혔다. 그 수를 바라보며 요다의 얼굴에 언뜻 미소가 감돌았다. 그러고는 잠시 후 투석. 71, 73은 실로 통렬한 일격이었고 망설이던 요다는 비로소 마음 편하게 돌을 던질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이 두 수는 요다의 목을 쳐준 수였다. 73에 백이 저항하려면 '참고도' 백1, 3을 선수한 뒤(흑4 이음)5로 몰면 된다. 그러나 1, 3이 워낙 악수인데다 흑12까지 한 수 늘어진 패가 나기 때문에 가뜩이나 불리한 백으로서는 더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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