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통화' 도·감청 의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이종찬(국민회의)부총재 사무실에서 문건을 입수한 평화방송 이도준(李到俊)차장은 '세기적 특종을 하고 싶어서' 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형근(한나라당)의원에게 전달한 이유에 대해 그는 "언론탄압 성격이 강한 문건이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특종 욕심과 정의감' 을 거론한 그의 발언에는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다' 는 게 기자 사회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그의 행적에 아리송한 대목이 있다는 지적이 함께 나오고 있다.

첫째, 우선 출입처를 사회부로 옮긴 뒤에도 이종찬 부총재의 사무실을 수시로 드나들었다는 점이다.

그는 "정치부로 복귀하려는 생각에서 정치부 기자의 감을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취재원과 접촉해 왔다" 고 해명했지만 "취재원과 기자간의 일상적 관계를 넘어선 것" 이라고 의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둘째, 28일 밤 '고백 기자회견' 직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를 찾아간 점도 석연치 않은 대목.

이에 대해 李차장은 "야당이 사건을 더 이상 확대하지 않고 국회가 정상화되면 내가 보호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이를 부탁하러 갔다" 고 밝혔다. "정형근(鄭亨根) 의원을 자제시켜 달라" 는 요청을 위해서란 주장이다.

하지만 鄭의원을 젖혀두고 불쑥 李총재를 찾아간 데 대해 야당은 여권의 공작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이회창 총재와의 커넥션' 의혹을 만들려는 여권에 李차장이 이용당했을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더구나 李차장은 28일 오전부터 자정 무렵까지 이종찬 부총재 비서인 최상주(崔相宙)보좌관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가 李차장이란 사실을 여권이 어떻게 알았느냐는 점은 도.감청 의혹으로 이어져 또다른 쟁점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李차장은 "鄭의원과 나의 전화가 도.감청됐다고 판단했다" 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李부총재측에서 먼저 제보자로 나를 지목하고 만나자고 했다" 며 "(내가)강하게 부인했음에도 심증과 확증이 있다고 했다" 고 털어놓았다.

최상주 보좌관은 제보자 신분이 밝혀지기 훨씬 이전인 28일 오전 "심증이 가는 사람이 있다" 고 말해 여권이 이미 전모를 파악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정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