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 교사의 아름다운 퇴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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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점심 한끼를 해결하지 못해 수돗물로 허기를 달래는 아이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 서울 면목고에서 얼마전 정년퇴임한 김준태(金俊泰)교사가 동료교사들과 '면목장학회' 를 만들어 학생돕기에 나선 동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는 퇴직 전까지 매월 10만원씩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동료교사들도 뜻을 함께해 면목장학금은 지금 2천만원을 넘고 있다. 이 돈으로 학생 47명의 등록금을 대신 내고 있다. 이러던 그가 10월 초 퇴임하면서 퇴직금 중 2천만원을 선뜻 떼내 장학금에 보탰다.

지금 교육현장이 흔들리고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상황 속에서 김준태 교사가 보인 헌신은 존경받아 마땅할 교사상(敎師像)이다. 자신이 평생 몸담은 교직을 마감하는 아름다운 퇴임의 모습이다. 끝없는 제자사랑에 고개가 숙여지는 숙연함을 느낀다.

어디 金교사 뿐이겠는가. 선천성 흉부질환을 앓고 있는 학생의 수술비를 대기 위해 모금운동을 펼친 담임교사가 있고 학생들과 함께 폐품 수집으로 모은 돈을 주식에 투자해 정년 퇴임하는 날 졸업한 제자들을 불러 모아 배당금을 나눠주면서 산 교육을 실천한 스승도 있다.

국어 교사 김혜련씨가 쓴 '학교 종이 땡땡' 처럼 학생들 눈높이에서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현장교사들이 수없이 많다.

영국작가 제임스 힐턴의 '굿바이 미스터 칩스' 에 나오는 사랑과 헌신의 교사들이 곳곳에서 묵묵히 교단을 지키고 있기에 우리의 교육은 그래도 건강하다는 위로를 받는다.

전국 초.중등 교사가 줄잡아 25만명이다. 열악한 교육환경에 넘치는 잡무, 4인 가족을 꾸려 나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박봉에 시달리고 있다. 때로는 유혹에 넘어가 '촌지' 를 받는 사례도 있었겠지만 제한된 사례일 것이다.

헌신과 봉사는 묻혀진 채 촌지교사로만 낙인 찍히니 교사로서의 자긍심과 보람을 찾을 길 없다. 여기에 교육개혁 바람이 불면서 개혁의 주체여야 할 교사가 개혁의 대상이 돼버렸다. 명예퇴직.희망퇴직으로 언제 학교를 그만두고 무엇으로 노후를 보장할지를 궁리하는 이상한 풍토로 교직사회가 바뀌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교사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교사를 믿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일부 교사들의 비리를 전체 교사들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하지 말아야 한다.

몇몇 교사의 드러난 미담만을 칭찬할 게 아니라 대부분 교사들이 헌신과 사랑으로 자녀들을 돌보고 가르친다는 확신을 학부모 스스로 할 필요가 있다.

교사가 믿음과 긍지를 갖춰야 교육이 살아난다. 교육개혁은 내려 먹이는 게 아니라 교사 스스로 개혁과 변신의 주역으로 등장해야 올바른 개혁이 가능하다.

어느 한 교사의 아름다운 퇴임을 보면서 더욱 이런 생각이 절실해진다. 교사를 칭찬하자. 교사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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