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의 중국 산책] 주룽지, 은퇴 지도자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중앙일보

입력

2009년 10월 7일
'세계미디어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에 도착한 소생은 호텔에 여장을 푼 뒤 왕푸징 서점으로 향했습니다.

9월2일부터 서점에 깔리기 시작했다는
'주룽지, 기자에게 답하다'(朱鎔基 答記者問)라는 도서 구입을 위해서였지요.
이 책에는 주룽지 선생이 부총리와 총리 시절
외국 주요 언론사와 인터뷰한 내용,
그리고 매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일에 내외신 기자들과 가진 회견 등
그의 시정방침, 그의 치국책략, 그의 위민애국 정신과 포부 등이 담겨 있지요.

내용도 궁금하긴 했지만
소생이 몸 담고 있는 회사가 두 차례 언급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첫째는 주룽지 총리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회견 내용입니다.
2000년 9월 21일 주룽지 당시 총리는 한국 언론사 중에서는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중앙일보 홍 회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인터뷰에 응합니다.
인터뷰 전문이 상세하게 실려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이 인터뷰를 10월 초 주룽지의 방한에 맞춰 보도합니다)

둘째는 소생이 2001년 3월 전인대 폐막일에
주룽지 총리에게 던진 질문이 실려있는 부분입니다.
전인대 폐막일의 기자회견은 지금도 그렇지만 중국 TV는 물론
미국의 CNN 등이 라이브로 중계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현장입니다.

베이징에 모인 300여 기자들로선
중국의 총리를 상대로 자국과 관련된 질문을 하거나 평소 궁금증 해소를 위해
한 번 기자회견에 보통 15개 내외의 질문권이 주어지는 현장에서
질문권을 따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곤 했습니다.
특히 주룽지 총리의 인기가 대단한데다
질문권을 따낸다는 게 國家의 파워와 社勢를 반영한다는 측면도 있어
질문권을 받아내려는 경쟁은 한층 치열했던 생각이 납니다.

'저요, 저요' 마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 질문에 너도나도 손을 드는 어린이 같은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낙점권을 가진 중국 외교부 대변인과 전인대 대변인을 향해
두 손 번쩍 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기자회견 후반부에 간신이 질문권을 얻은 소생은
그래서 제가 했던 질문을 아직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분명 제 질문은 '존경하는 주룽리 총리 안녕하십니까'로 시작됩니다.
중국어로는 "尊敬的 朱總理 닌하오(닌好)"입니다.
여기선는 '닌'의 한자가 서비스되지 않아 그냥 닌으로 씁니다.
중국어에서 너나 당신은 '니'라고 하고, 너에 대한 존칭은 '닌'입니다.

헌데 제가 했던 질문 부분을 살펴보니,,
'닌'이 다 '니'로 고쳐져 있더군요. 이상하다 싶었습니다만
최근 아주주간에서 전한 기사를 보고 자초지종을 알 수 있었습니다.

책을 내면서 주룽지 선생은
기자와 자신은 평등하다며 자신을 향해 불려진 '닌'을 모두 '니''로
고치도록 했다는군요.

뿐만이 아닙니다. 이 책의 제목도 그렇습니다.
책을 낸 출판사인 인민출판사에서는
당연히 '기자에게 답하다' 보다는 '주룽지' 이름 석 자가 갖는 의미가 더 큰지라 제목에서 '주룽지' 석 자를 '기자에게 답하다' 보다 크게 썼지요.
헌데 이 또한 한 없이 몸을 낮추려는 주룽지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기자에게 답하다'라는 글자가 주룽지 이름보다 커지고 말았습니다.

2003년 3월 국무원 총리에서 퇴임한 주룽지 선생은
여간해선 공공장소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지난 6년 간 공개활동이라고는 덩샤오핑 탄생 100주년 기념식,
덩샤오핑의 부인 줘린 여사의 장례식, 유럽중소기업상 시상식 등이
전부로 알려집니다.
지도자로서 생색내기 좋은 베이징 올림픽 개폐회식 때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지난 10월1일 중국 건국 60주년 행사 당시엔
천안문 성루에 선글라스를 끼고 올랐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백발이 된 그를 보고 많은 중국 인민들이 안타까워 했다는 소식입니다.

책이 출판된지 한 달 여가 지난 현재
그의 책은 무난히 120만 부 판매를 돌파할 것이라고 합니다.
책 가격도 싸지는 않습니다. 59위안이니 1만원이 넘는 수준입니다.
또 한가지 잔잔한 감동을 주는 건 정부 단위의 대량 구매가 전혀 없이
순수한 중국의 라오바이싱들이 주룽지를 그리며 책을 사고 있다는 점입니다.

"죽는 날까지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다"던 그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겠다는 윤동주 선생을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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