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 & 파워 … 두 날로 춤추는 연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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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연아가 007 본드걸로 변신해 쇼트 프로그램에서 환상의 연기를 펼쳤다. 사진은 총 쏘는 장면을 묘사한 엔딩신이다. [파리=연합뉴스]

이번 시즌 김연아(19·고려대)는 지난 시즌보다 한 단계 더 진화했다. 점프에는 힘이 넘쳤고, 스케이팅 기술은 부드러웠다. 표정 연기나 동작은 한층 성숙해져 섹시한 분위기(쇼트)를 연출했다. 여기에 프리에서는 우아함까지 더했다. 210점대를 넘어서자 세계 피겨계는 이제 누가 정상에 오를지보다 김연아가 여자 싱글 부문의 한계를 어디까지 확장할지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

◆숱한 노력으로 얻은 섹시함=이번 시즌 쇼트프로그램 ‘007 메들리’에서 김연아는 섹시한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요염한 눈빛과 섹시한 몸 동작으로 관중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런 변화는 여름 내내 이어진 노력의 산물이다. 김연아는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과 함께 007 시리즈를 모두 보면서 ‘본드걸’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손톱에 검은색 매니큐어를 칠하거나, 머리에 큐빅 핀을 꽂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썼다. 섹시한 몸 동작을 체득하기 위해 평소에도 본드걸의 몸짓을 흉내 내고 다녔다.

쉼 없이 이어지는 빠른 연기를 위해 체력 훈련도 강화했다. 김연아의 물리치료사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체력 훈련을 확 바꿨다. 힘들기만 한 일반 체력 훈련 대신 피겨에 맞는 맞춤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번 대회에서 프리스케이팅 전 워밍업 시간에 김연아는 총 여덟 번의 연습 점프를 뛰었다. 다른 선수들은 4분여 프리프로그램을 앞두고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3~4회 점프 점검에 그친다. 앞선 체력 덕분에 가능했다.

◆파워풀한 트리플 러츠가 압권=대회 여자 싱글 부문 심판이었던 이지희 대한빙상경기연맹 피겨 부회장은 “이번 대회에서 김연아가 가장 잘한 부분은 점프, 그중에서도 첫 점프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 루프 점프”라고 말했다. 김연아의 러츠 점프는 남자처럼 파워풀하고 높기로 유명하다. 이 부회장은 “첫인상이 중요하기 때문에 선수들은 첫 점프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다. 김연아는 첫 점프를 남자처럼 시원스럽게 성공시키면서 심판들을 압도해 버린다. 그 점프를 본 심판들은 이후 연기에 대해 마음이 후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시즌 김연아는 첫 점프로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 루프 점프’를 뛰었다. 하지만 플립 점프가 석연찮게 에지 판정을 받으면서 단독 점프로 돌렸다. 대신 장기인 러츠 점프를 도입부에 배치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밴쿠버에서는 220점도 가능=신기록을 세웠지만 김연아가 모든 수행요소를 완벽하게 처리한 건 아니다. 해바라기씨 논란 속에 플립 점프는 아예 뛰지 못해 0점 처리됐고, 연기 막판 플라잉 싯스핀과 체인지풋컴비네이션 점프는 모두 레벨3(최고등급은 레벨 4)을 받았다. 쇼트에서 트리플 플립 점프로 6.5점을 얻었고, 두 개의 스핀에서 모두 레벨4로 0.7점을 더 받은 걸 감안하면 총 7.2점 이상 상승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부회장은 “이번 대회가 시즌 첫 대회임을 감안하면, 연기가 무르익는 올림픽 때는 220점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파리=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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