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경제진단] '인플레 고삐' 지금 잡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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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KDI가 내놓은 경제진단은 정부와 적잖은 시각차를 보여준다. 외형상 지표 전망치엔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정책방향은 다르다.

정부가 경기진정을 위한 선제적 통화정책은 아직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인 반면 KDI는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내년에 물가불안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투신사 구조조정 문제도 정부는 내년 7월 이후를 보자는 것이지만 KDI는 곧바로 근본적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 경기전망〓올 상반기 중 7.3% 성장한 경제는 하반기에 가속도가 붙어 10%이상 성장하고 연간으로는 9.0% 성장할 것으로 KDI는 수정 전망했다.

내년엔 5.8%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이는 정부가 경기부양적 거시정책을 중단하고, 기업.금융 부실을 신속히 처리하는 것을 전제로 했다.

만약 팽창적 통화.재정정책을 멈추지 않고 투신사 구조조정 등도 미적거릴 경우 내년 경제성장률 거품처럼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 민간소비는 6.0% 늘어나고 설비투자도 11.5%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건설투자도 올해 -7.1%에서 내년엔 3.6%의 증가세로 반전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물가는 3.2%로 전망했다. 물론 이것도 신축적인 통화정책을 전제로 했다. 경상수지 흑자는 올해 2백24억달러에서 내년엔 1백23억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 산적한 불안요인〓외형상의 빠른 성장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금융부문의 부실문제가 남아있어 내부에 구조적 불안요인이 상존해 있다는 게 KDI의 판단이다.

특히 발등에 불인 대우와 투신사 위기는 근본적 문제해결이 미뤄질 경우 경제가 다시 위기국면에 빠질 수도 있다고 KDI는 우려했다.

또 하나 큰 걱정은 인플레다. KDI는 최근 급속한 경기상승과 대외여건의 변화가 조만간 인플레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KDI는 올 연말께는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경제성장 범위인 '디플레 갭' 이 완전히 해소될 것으로 진단했다. 디플레 갭이 없어진다는 것은 경제성장이 더해질수록 물가를 압박하게 된다는 의미다.

KDI는 물가에 영향을 주지않는 실업률도 외환위기 이전 2%에서 최근 5%대로 높아진 것으로 추정했다. 이미 실업률은 5%선으로 떨어진 상태다. 여기서 더 떨어지면 임금상승이 활발해지고 이는 물가 오름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 선제적 금리정책 필요〓KDI는 기업들의 수익성이 크게 좋아지고 경기상승에 가속도가 붙은 현 시점이 구조개혁을 완결할 적기라고 강조했다. 단기적 충격은 예상되지만 경제의 기초체력이 좋은 만큼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것이란 진단이다.

우선 대우문제와 관련해 이해관계자들의 손실분담을 통해 살릴 곳은 살리되 회생가능성이 없는 계열사는 과감히 청산할 것을 KDI는 제안했다. 투신사 문제에 대해서도 이번 기회에 신탁자산의 부실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제도개선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KDI는 또 지금이 향후 인플레 위험에 예방하기 위해 단기금리를 신축적으로 운용할 시점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단기 정책금리를 서서히 올리는 선제적 통화신용정책을 제안한 것이다. 다만 투신사 부실 해소를 위해 근본적 구조조정을 진행할 경우는 충격완화 차원에서 단기금리 인상을 당분간 유보할 수 있을 것이란 견해를 보였다.

KDI는 정부에 대해 재정적자도 과감히 줄이라고 권유했다. 앞으로 중장기적 재정건전화를 확보하기 위해 올 정기국회에서 '재정건전화 특별법' (가칭)을 제정해 예산팽창을 막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까지 제시했다.

실업문제에 대해선 이미 경기하강 요인에 따른 실업은 대부분 해소된 만큼 단기 일자리 창출보다 능력있는 사람과 일자리가 쉽게 연결되도록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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