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 '인권시위' 또 봉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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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유럽 순방에 나선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인권문제로 수난을 겪고 있다.

수난은 첫 방문국인 영국에서 이미 시작됐다. 영국 왕실과 정부는 중국 국가주석으로 50년만에 영국을 처음 방문한 江주석을 극진한 예우로 최고의 대접을 해주고 있다. 19일 버킹엄궁에서 열린 만찬도 화기애애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만찬사에서 영국이 지난 97년 홍콩을 중국에 반환한 이래 양국관계가 크게 개선된 점을 지적하면서 "양국이 세계 평화와 번영을 이루는 데 협력해나가자" 고 제의했다. 江주석은 "나의 국빈 방문이 양국 관계 발전에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믿는다" '면서 "만약 우리가 앞으로 50년 동안 굳게 협력한다면 중국을 민주화와 문명화가 고도로 진행된 번영되고 근대화된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 수 있을 것" 이라'고 화답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냉담하다. 인권단체들은 '계란세례' 로 江주석을 '접대' 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

영국 경찰관들은 "주석께서는 계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는 말로 행사장 주변에 모인 사람들에게 접근, 계란소지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18일에는 인권운동가 2명이 江주석과 엘리자베스 여왕이 나란히 탄 마차를 향해 돌진하다 체포됐다. 19일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친(親)티베트 단체 등 인권단체들은 버킹엄궁 밖에서 시위를 벌였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江주석과의 회담에서 인권문제를 거론할 방침이다. 달라이 라마와 대화하는 것이 티베트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입장도 전달할 예정이다. 코소보 사태에서 기치를 드높인 블레어식 인권외교의 연장선이다.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인권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심상치 않은 영국내 분위기에 놀란 중국 외교부는 19일 "모든 국가는 시민의 기본적 자유를 보장할 권리와 함께 국가의 손님을 정중히 대접할 의무를 갖고 있다" 는 성명을 발표했다.

江주석은 해외에서 체험하는 반(反)중국 시위에 극히 민감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3월 스위스 방문 도중 친 티베트 시위대와 마주친 뒤 스위스 당국의 처사에 화가 난 그는 스위스 의회 연설에서 "여러분은 좋은 친구를 잃었다" 고 농반진반으로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江주석의 수모는 다음 방문국인 프랑스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국제인권사면위원회를 위시한 인권단체와 티베트 돕기 단체들이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손님에게 정중한 예우를 해주는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따질 건 따져야 한다는 게 江주석의 방문을 지켜보는 유럽인들의 일반적 시각이다.

파리〓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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