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81>박세리와 최경주, 랭킹을 매긴다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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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호 16면

‘양용은의 PGA챔피언십 우승과 LPGA투어에서 활약 중인 박세리의 업적을 비교한다면 어느 쪽에 더 높은 점수를 주시겠습니까.’
월간 골프다이제스트 코리아가 최근 골프 팬들을 상대로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6명은 ‘양용은의 PGA챔피언십 제패가 값진 성과지만 LPGA투어에서 메이저 5승을 포함해 총 24승을 거둔 박세리의 업적에는 못 미친다’고 대답했다. 반면 ‘박세리가 이제까지 이룬 모든 성과보다 양용은의 메이저 우승이 더 낫다’고 대답한 사람은 10명 가운데 3명 정도였다.

두 번째 질문.
‘PGA투어의 최경주와 양용은, LPGA투어의 박세리 가운데 후배들에게 끼친 영향력을 기준으로 순서를 매긴다면-.’
1위는 PGA투어에서 7승을 거둔 최경주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골프 팬들의 대답은 보기 좋게 예상을 빗나갔다. ‘박세리-최경주-양용은’이라고 대답한 이가 전체의 85%를 넘었다. 결국 국내 골프 팬들은 PGA투어에서 활동해 온 최경주의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일찌감치 미국에 건너가 LPGA투어를 휩쓴 박세리를 해외 개척의 선구자라고 여기는 셈이다.

세 번째 질문.
‘양용은의 PGA챔피언십 우승과 최경주가 PGA투어에서 7승을 거둔 것을 비교한다면 어느 쪽에 더 높은 점수를 주겠는가.’
전체 응답자의 40%는 최경주의 7승이 더 값지다고 대답했다. 물론 ‘양용은의 메이저 대회 우승이 더 빛나는 성과’라는 대답도 33%나 됐다. 최경주나 양용은, 박세리의 업적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해당 선수들은 난데없이 PGA와 LPGA투어를 단순 비교하는 것에 당혹감이나 불쾌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마치 ‘엄마와 아빠 가운데 어느 쪽이 좋으냐’는 식의 질문처럼 비쳐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이건 분명히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골프 팬들이란 결국 대한민국 국민을 말하며, 국민의 판단은 항상 냉정하다는 거다.

골프 팬들은 양용은이 타이거 우즈를 꺾고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운과 실력이 반반씩 작용한 덕분’(63%)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 한국 골퍼들이 세계 무대를 누비는 가장 큰 이유는 ‘오직 골프만 알고 연습에 몰두하는 생활 자세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은 결국 골프만 알고 공부는 하지 않는 생활 태도에 대한 우려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골프 팬들은 ‘세계적인 선수를 길러내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그린피 인하 등 연습 환경 제공’이라고 대답한다. 그다음 필요한 일로는 ‘국내 골프 대회 육성과 지원’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 골프가 뭐기에 도대체 이 난리인가. 골프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겠다. 골프 팬 10명 가운데 7명은 ‘한국 선수가 국제 골프 대회에서 이름을 떨치면 국력이 증대되고 나라의 위상이 올라간다’는 의견에 동감을 표시했다. 골프는 2016년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으니 이런 의견은 더욱 많아질 듯하다. ‘개인 종목인 골프 대회에서 우승하는 걸 국가 위상과 연계해 확대 해석하는 건 억지’라고 대답한 사람은 10명 가운데 1명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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