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총재 "합당하면 정계은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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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자민련 박태준(朴泰俊.TJ)총재가 지난 14일 김종필(金鍾泌.JP)국무총리.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연쇄회동한 뒤 돌연 부산행 비행기를 탔다. 일정에 없던 그의 부산행은 조영장(趙榮藏)비서실장 등 최측근 외엔 비밀에 부쳐졌다.

국정감사, 2여(與)의 정치개혁입법 및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 해임건의안 협의, 국회 대표연설 준비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TJ의 '돌연한 잠적' 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자민련 핵심당직자는 JP-TJ 단독회동 때 있었던 공개되지 않은 대화내용을 소개하며 그 의미를 찾아보려 했다.

그는 TJ가 연쇄회동 내용 일부를 주요 당직자들을 불러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 당직자가 전한 대화내용 요지.

TJ:(합당반대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하며)도대체 득표에 하나도 도움이 안되는 합당을 왜 하려 하는가. 중선거구제를 하면 우리 당이 내년 총선에서 최고 68석에서 72석까지(자민련 현재 의석은 55석) 얻을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나왔다. 그런데도 이렇게(중선거구제를 포기하고 합당)한다면 차라리 내가 당을 떠나겠다. 정치도 그만 두겠다.

JP:중선거구제를 해야 하지만, 충청권 출신 의원들의 반대가 워낙 심하다.

TJ:오늘 아예 나와 합당하지 않겠다는 합의를 하자. 그리고 공개적으로 이를 천명하자.

JP: '합당 안한다' 는 합의선언을 하는 것은 곤란하고…. 연말까지 朴총재가 당론을 모으면 거기 따르겠다.

TJ:이미 대통령께도 '합당하면 경상도는 (야당에) 먹힌다' 고 말씀드렸다. 대통령은 그저 웃으셨지만.

TJ가 '당을 떠나겠다' 는 정계은퇴의 배수진을 치고 '합당불가 선언' 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이에 당황한 JP는 '당결정에 따르겠다' 는 예의 노련한 화술로 비켜간 것이 14일 회동의 진상이란 얘기다.

TJ는 최근 사석에서 金대통령에 대한 불편한 마음도 표출했다고 한다. 다른 당직자는 "TJ는 세풍수사 및 김현철씨 사면문제를 '정치적으로 처리하면 안된다' 고 간곡히 건의했지만 金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며 "이때부터 정서적인 거리가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고 해석했다.

이밖에 합당문제 등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이 TJ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중선거구제 문제에 대해서도 "DJ는 말만 하고, JP는 소극적" 이라는 불만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따라서 그의 부산행이 DJP에 대한 정치적 시위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조영장 실장은 "성묘 겸 휴식 차원" 이라고 했다. DJP의 합당추진 방침이 TJ의 강력한 반발로 주춤거리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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