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기 왕위전] 유창혁-이창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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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뭔지 모르지만 白이 당한 느낌인데

제2보 (25~48) =백 같은 수를 소위 강수라 부른다. 백도 공배가 차있어 불안한 모습이지만 강인하게 흑의 가운데를 돌파하고 있다. 힘이 약하면 이런 수에 속수무책이고 순식간에 무너지고 마는 것이 바둑이다.

그렇다면 천하의 李왕위는 이런 경우 어떻게 대응할까. 흑25, 27에 검토실에 모인 프로들은 깜짝 놀라고 만다. 저런 수도 있느냐며 모두 혀를 내두르고 있다.

잡초류다. 속맥 (俗脈) 중의 속맥이다.

그러나 김수장9단은 신수는 아니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수법인데 기억이 안난다고 한다.

李왕위의 의도는 28을 유도해 33까지 귀에서 살아버리고 (실리의 이득이 상당하다) 흑▲ 한점은 가볍게 처리하려는 것이다.

바둑도 일종의 상술이라면 상술이다.

계속 변화가 나오고 또 뭔가를 바꾸는데 그 이해득실에 밝은 사람이 이기게 돼있다.이렇듯 바둑의 계산이란 단지 끝내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34로 흑▲는 거의 명맥이 끊겼지만 35가 절호의 요소여서 흑은 충분히 채산을 맞추고 있다. 劉9단이 36으로 응수를 물었을 때 ( '가' 로 막으면 '나' 로 붙인다) 李왕위는 37로 반문하고 나섰는데 이 수가 매우 날카로워서 劉9단은 고심에 잠겼다.

젖히면 끊는다. 그걸 알면서도 젖혀버린 38은 돌의 기세였을까. 국후 두 사람은 이 부근에서 무수한 변화도를 그렸는데 그 중의 하나가 '참고도' 다.

48까지의 실전은 뭔지 모르게 백이 당한 느낌을 주는데 그 이유가 곱게 뻗지 않은 38에 있지 않을까 본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도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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