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희종 '마침내 바보가 되다'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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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시동을 끈다 나는 출근을 완료하였다

차 안의 쓰레기를 챙겨 한 손에 들고

또 지난 밤 집에서 뒤적이던 책들을 다른 손에 들고

차문을 닫는다 또한 나는 하차를 완료하였 다

현관에서 한 손에 든 쓰레기를 버리고

다른 한 손의 책들을 든 채

계단을 천천히 걸어 3층까지 올라와

긴 복도를 걸어 끝에서 두번째 내 방문 앞 에 선다

주머니에 열쇠가 없다

- 이희종의 '마침내 바보가 되다' 중

도시의 회사원. 그가 집에서 회사까지 차를 타고 와 사무실로 들어가다가 열쇠가 없어 다시 주차장의 차에 두고 온 열쇠를 꺼내 오는 과정을 아주 비정한 환각처럼 그려내고 있다. 어디 하나 우수나 희망 따위도 틈입할 수 없다.

그렇게 인간은 은연중 바보가 되고 있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능력이다. 그걸 꿈이라 했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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