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당의 치졸한 선전공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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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어제 국민회의가 본지(本紙)에 보낸 6개항의 공개질의서에 접한 우리의 심정은 한마디로 착잡하고 어처구니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집권여당인데 온갖 편견과 가상(假想)을 뒤섞어 짜깁기한 질의서가 스스로 생각해도 낯부끄럽지는 않은지 궁금하다.

여당은 권력에 의한 신문사 인사.편집권 간섭이라는 이번 사태의 본질과, 본지가 보도한 관련 행태에 대해서는 언제까지 답변을 회피할 작정인가.

국민회의의 질의내용은 처음부터 초점이 빗나갔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며, 따라서 언론사 사장도 비리혐의가 있다면 엄정하고 공정하게 사법처리를 진행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우리가 지금 주목하는 것은 이런 법 절차와는 별도로 사태의 전개과정에서 자행된 정부의 본지 탄압사례들, 특히 몇몇 과잉충성파의 장기간에 걸친 명백한 외압과 일탈(逸脫)행위였다.

며칠 전 청와대 대변인은 "중앙일보 洪사장이 '내가 사장직을 물러나고 정부가 원하는 대로 신문사 인사를 해주겠다' 며 거래를 시도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고 주장했다. 그 말이 설혹 사실이더라도 그렇다면 洪사장은 왜 정부가 말하는 '중앙일보와 전혀 관계없는 보광그룹 탈세사건 수사' 를 맞아 중앙일보 인사권 '헌납' 을 정부에 제시했겠는가.

여당은 또 올 봄 삼성그룹에서 분리돼 독립언론으로 새로 출범한 본지가 재벌의 이익을 대변했고 지난 정권에서 '유일하게' 언론자유 목소리가 없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민주주의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기업가정신을 주창하는 것이 재벌이익 옹호라면 국민회의는 도대체 어떤 정당인가.

그럼 중앙일보를 아끼는 수많은 독자들은 재벌 비호세력 아니면 상식이 없는 국민이라는 뜻인지 묻고자 한다.

지난 71, 73, 75년의 세차례에 걸쳐 기자들이 독재정권에 맞서 언론자유선언문을 발표했고, 급기야 80년에는 계열사인 동양방송을 정권에 빼앗긴 사태는 중앙일보사 아닌 다른 언론사의 일이었나. 80년 기자 대량해직 사태와 88년 발생한 현 국정홍보처장인 오홍근(吳弘根)부장 테러피습 사건은 타신문사의 일이었던가.

국민회의 질의서는 치졸하게도 본사가 '사장실을 비롯한 회사 곳곳에 녹음기를 설치하여 내부도청을 해오고 있었다' 고 강변했는데, 틈만 나면 들이닥치는 외부세력을 막기 위해 방범창이나 경보기를 설치하는 것도 잘못인가.

청와대 대변인의 물컵 던지기 행위가 녹음돼 전국민에게 알려진 것이 그렇게도 안타깝고 애석했는가. 질의서가 이번 사태에 관해 타언론사 기자들의 동조서명이 한건도 없었다는 거짓말까지 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언급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국민회의가 6개항이니 60개항이니 하는 질의서만 낼 게 아니라 단 한가지 답변부터 하기 바란다. 정권출범 후 중앙일보에 외압을 행사한 사실이 도대체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 이 문제부터 해명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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