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수사기관에 떠넘기면 도·감청 더 기승부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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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남궁석(南宮晳)정보통신부 장관의 발언이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南宮장관이 27일 국민회의 당사에서 열린 통신 당정회의에서 감청시설에 대한 관리.통제업무를 정보통신부에서 수사기관 등 관련부처로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 것.

그동안 정통부는 감청시설을 관리하고 있다는 '죄' 로 해마다 국감 때면 야당의원들의 공세에 시달려 왔고, 이 때문에 차라리 감청을 담당하는 수사기관이 아예 시설관리까지 맡으라는 발상이 나온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감청업무가 시설관리부터 감청까지 일원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발언이 알려지자마자 한나라당은 즉각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마디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겠다는 발상' 이라는 게 한나라당의 인식이다.

당내 도.감청 대책특위 간사인 김형오(金炯旿)의원은 "정통부가 지금까지 수사기관의 불법 도.감청을 방조하거나 지원해온 것만으로도 모자라 아예 도.감청 업무를 수사기관에 떠넘기려는 책임회피성 발언" 이라고 지적했다.

야당의 반발엔 현실적인 측면도 있다. 정부 기관의 감청에 대한 견제를 그나마 정통부가 해왔는데 시설관리업무마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게 되면 감청에 대해선 사실상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게 된다.

법사위의 이규택(李揆澤)의원도 "도.감청에 대한 자료와 정보를 각 기관에 분산.은닉시켜 국회의 견제를 불가능하게 만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며 "이렇게 되면 각 수사기관이 개별적으로 행하는 도.감청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 이라고 우려했다.

정통부의 이런 입장은 한나라당의 당론과도 배치된다. 한나라당은 오히려 도.감청 설비에 대한 통합관리업무를 정통부로 일원화하는 쪽으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국회에 내놓고 있다.

국가정보원과 검찰 등 국가기관이 도입하는 감청설비를 정통부 인허가 대상에서 제외해주는 현행법이 감청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안그래도 불법 도.감청문제가 국정감사의 최대쟁점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南宮장관의 발언은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한나라당 하순봉(河舜鳳)총장은 "어떤 식으로든 南宮장관에게 직접 책임을 물을 것" 이라고 했다.

한나라당은 해임건의안 제출을 포함한 南宮장관에 대한 제재(制裁)방안도 면밀히 검토키로 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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