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관료가 꼬집은 관료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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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행정자치부의 한 공무원이 공직사회의 그릇된 풍토를 신랄하게 비판한 '관료가 바뀌어야 나라가 바로 선다' 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 실린 우리 공직사회의 치부와 병폐는 새롭다고 할 것은 없다.

지연.학연이 지배하는 인사, 낭비적 형식주의, 출세 제일주의, 보신 (保身) 지상주의 등 그동안 언론을 통해 숱하게 지적된 내용들이다.

그러나 저자의 공직경험과 해외유학 때의 체험 등을 바탕으로 외국사례와 비교해 피부에 와닿게 고발한 우리 공직사회의 모습을 접하고 나면 그 후진성에 절로 한숨이 나오고 개혁의 시급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책이 지적하고 있듯이 우리 관료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개인의 창의성과 조직의 효율성에 바탕을 둔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지 않고 과거 수십년간 고착된 왜곡된 인간관계가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무원으로 출세하려면 세도가 출신이거나 고시에 합격하든지 고향을 잘 타고나야 한다는 것, 밤 12시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고 공휴일에도 출근해야 일하는 것으로 인정받는 분위기, 보고서의 내용보다 치장하는 데 드는 엄청난 인적.물적 낭비 등 책의 지적들은 공직개혁 구호가 아무리 우렁차도 관료사회는 변하지 않고 있음을 실감있게 보여주고 있다.

지금껏 정부의 공직개혁 추진이 이런 실정을 모르고 있거나 초점이 빗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갖게 된다.

우리는 "공직개혁 없이는 나라의 미래도 없다" 는 대통령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현정부의 반부패특위.중앙인사위.고위직 개방임용제도 같은 공직개혁 장치에 기대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책에서처럼 정부가 아직도 구식 인사관행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현실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부정부패의 척결과 함께 공직사회의 그릇된 풍토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잘못된 인사관행에 대한 혁신적인 개선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지연.학연이 좋아야 출세한다는 소리가 공직사회에서 나오지 않아야 한다.

동시에 상층부의 의지를 실행하는 충성심보다는 전문성과 창의성이 중요한 시대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공직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상층부부터 달라지지 않으면 안된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출세하기 위해서는 윗사람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공직자들의 의식에서 사라지도록 솔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무원조직의 병폐는 치유되기 어렵다.공직자들이 연줄이 아닌 업무능력으로 시장원리에 따라 경쟁하는 풍토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래서 인물이 아닌 시스템 작동을 촉진시켜야 한다.

그래야 관료가 바뀌어 나라가 바로 서고, 그래야 국가의 미래가 있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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