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건국50주년] 4. 중국 국유기업 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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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허예췬 (何葉群.44.여) 은 광둥 (廣東) 성 광저우 (廣州) 시내의 중산 (中山) 로 일대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이다.

오전 3시50분 일어나 밥을 먹고 30분을 걸어 일터로 간다.

오전 5시부터 2시간이 가장 힘들다.

밤새 쌓인 오물이 산더미 같기 때문이다.

30분을 쉬고 나면 다시 오전 10시30분까지, 오후엔 2시30분부터 5시까지 거리청소는 하루 세차례다.

92년 전기기계공장에서 샤강 (下崗.정리휴직) 한 뒤 얻은 일자리다.

처음엔 아는 이들을 만날까 걱정도 했다.

그러나 1천위안이 넘는 월급에 체면은 버렸다.

그래도 맞벌이하는 남편이 있으니 형편이 나은 편이다.

장메이칭 (張美淸.36.여) .오전4시에 양꼬치구이 수레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천근같이 무겁다.

쓰촨 (四川) 성 청두 (成都) 의 진장 (錦江) 전기기계공장에서 일하던 그녀는 97년 전국적으로 정리휴직 바람이 몰아칠 때 회사를 그만뒀다.

지금은 꼬치구이를 팔아 월 6백~7백위안 가량 번다.

생활보조금 월 1백46위안, 이혼한 전 남편으로부터 받는 아이들 양육비 60위안 등을 더하면 월수입이 8백~9백위안은 된다.

"당장은 먹고살 만하지만 앞으로 나이 들고 아플까봐 걱정" 이다. 이미 10년은 더 나이 들어 보인다.

요즘 베이징 시내는 건국 50주년 (10월 1일) 행사준비가 한창이다.

그러나 샤강자들의 눈엔 대대적인 행사준비가 사치로만 비친다.

여기저기서 "참, 돈 쓸데 없네" 라는 푸념이 터져나온다.

궈마오 (國貿) 빌딩 옆 교차로 공사에 대한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행사에 시간을 맞추느라 임시방편의 땜질식 공사를 했다는 지적이다.

축제가 끝나면 다시 뜯어고치는 공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에 냉소적인 샤강자들은 최근 이런 유행어를 만들어 냈다.

"마오쩌둥 (毛澤東) 의 샤샹 (下鄕.농촌으로의 강제노동) , 덩샤오핑 (鄧小平) 의 샤하이 (下海.사회로 나가 돈벌기)에 이어 장쩌민 (江澤民) 주석은 샤강을 강요하는구나. " 개혁 대상에 오른 75만개의 중국 국유기업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다.

국유기업 안에 학교.주택.병원 등 모든 것을 갖춘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고비용.저효율에 시달리며 적자를 내는 상황이 계속되자 당국이 본격적인 개혁에 나섰다.

그냥 내버려둘 경우 국유기업뿐 아니라 금융기관의 부실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92년 이전엔 사회주의 틀 안에서 활로를 모색했다.

이윤 유보제 도입이 대표적이다.

92년 이후 주식제 도입 등 소유제의 개혁을 통한 체제개혁의 시도가 이뤄졌다.

97년부터는 중점.대형 국유기업은 정부가 집중 지원하고, 국가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국유기업은 과감히 매각.처리하는 방안을 시도 중이다.

최근엔 국유기업의 악성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채전고 (債轉股)' 방안이 도입됐다.

국유기업의 부채를 출자전환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국유기업의 개혁이 본격화하면서 직장의 철밥그릇이 깨졌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샤강의 발생이 불가피했고, 대부분 서민의 삶도 더욱 어려워졌다.

지금까지 발생한 샤강자는 적게는 8백만, 많게는 1천5백만명. 밥그릇을 잃어버린 분노는 실직범죄로 이어지며 사회안정을 해치는 최대 위협요인으로 떠올랐다.

중국 당국으로선 이 문제해결을 정책의 최고 순위로 꼽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국영기업 개혁을 포기할 수도 없다.

과연 이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지. 새 천년을 앞둔 중국의 최대 고민인 셈이다.

베이징 = 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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