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기업 괴롭히지 않는 것이 규제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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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우리나라 규제개혁의 역사는 20여년에 이른다. 5공화국 때 제도개선위원회가 만들어졌고 김대중 정부부터는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까지 운영되고 있다. 각 정부마다 수백, 수천건의 규제 완화 실적을 자랑스럽게 발표하곤 했다. 규제 실명제, 일몰제, 총량제 등 규제개혁에 관한 화려한 수식어도 10여년 전부터 등장했다. 그러나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해 도장을 수백개 받아야 하고, 규제 때문에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겠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어제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에 규제개혁기획단이 새로 만들어졌다. 종전과 달리 삼성.LG.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기업과 경제단체 직원들까지 포함된 민.관 합동조직이다. 규제개혁을 수요자의 관점에서 철저하게 추진하기 위한 조직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그동안의 전시행정식 규제개혁을 할지, 아니면 정말로 기업 현실을 반영한 실질적인 규제개혁을 추진할지 두고 볼 일이다.

사실 우리 기업은 정부나 정치가 발목만 잡지 않으면 자신의 능력으로 뻗어나갈 역량을 갖추고 있다. 우리 기업이 해외시장에서 이만큼 성장한 것도 사실은 기업인들 스스로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제발 개발시대 관습에 젖어 민간 분야에 이러쿵저러쿵 개입하려 하지 말라.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기업을 괴롭히지 않고 가만히만 놔둬도 우리 기업은 더 뻗어갈 수 있다.

새로 만들어진 규제개혁기획단은 왜 규제에 대한 불만이 계속 나오는지에 대한 반성부터 해야 한다. 민.관 합동조직을 출범시킨 의도대로 관료의 입장이 아닌, 기업인 입장에서 모든 규제 내용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특히 각종 규제를 대상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최대한 단순화해야 한다. 일반인이 관청을 들락거리지 않고도 어떤 규제가 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관청의 재량을 최소화해야 한다.

중국이 곧 우리를 추월할 것이라는 우울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 때문에 기업을 못 하겠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온다면 우리 경제는 정말 희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