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 1백년…화차서 고속철까지 '성장의 원동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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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조랑말.우마차.인력거 등에 의지했던 한말 때인 1899년 9월 18일 서울 노량진~인천 제물포간 33.2㎞의 경인선 철도 개통은 우리나라 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일대 사건이었다.

당시 철도건설은 일본의 대륙진출을 위한 수단으로 추진돼 국가적 '비운' 의 출발이기도 했다.

경부선은 1905년에, 경의선은 다음해 개통된 데 이어 경부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1914년 호남선 (대전~목포) 이 완공됐다.

같은해 경원선 (용산~원산) 이 개통, 한반도에 X자형 기간철도망이 완성됐다.

이같은 철도망은 우리나라 근대도시를 탄생시키는 효과도 가져왔다.

경부선 개통으로 항구도시 부산이 도매상 집결지로 번성하게 됐고, 호남선은 목포.군산의 성장을 가져왔다.

한국전쟁은 모든 면에서 그랬듯이 철도에도 전환을 가져왔다.

당시 철도는 2백만 피난민들의 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전쟁 이후 60년대까지 철도는 우리나라 화물의 80%를, 교통수송은 절반 정도를 담당하는 물류의 중심축으로 경제부흥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7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인.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철도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같은 도로시대의 개막과 함께 마이카족의 등장으로 자가용 승용차가 대중화되면서 철도의 수송분담률은 급격히 떨어졌다.

이후 철도투자는 유지.보수 수준에 그칠 만큼 미미한 투자가 계속돼왔다.

현재 사용 중인 철도망의 60%가 일제 때 건설됐을 정도로 오늘날 국내 교통수단 가운데서 철도는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정종환 (鄭鍾煥) 철도청장은 "도로 중심의 정부정책과 자동차회사의 급성장으로 철도예산은 도로예산의 25% 수준에도 못미쳤다" 고 지적한다.

결국 철도는 자동차에 밀리면서 양적인 발전보다는 속도향상 (디젤.전철화) 으로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열차속도는 85년 경부선에서 시속 1백40㎞를 기록한 것이 최고기록이다.

반면 일본은 64년 시속 2백10㎞, 프랑스는 67년 시속 2백㎞를 기록했고 현재 일본.프랑스는 평균시속 3백㎞ 이상의 속도로 운행 중이다.

철도속도에서 선진국과 현격한 차이가 벌어진 셈이다.

이같이 철도속도에 대한 선진국들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우리나라도 88년 '단군 이래 최대 역사' 로 꼽히는 고속철도사업에 착수, 90년 경부고속철도 노선을 확정하기에 이른다.

오는 2004년 서울~대구간 고속철도용 철도 2백22㎞가 새로 건설되면 서울~부산간을 2시간40분에 주파, 본격적으로 비행기와 경쟁할 수 있게 된다.

지난해까지 12%에 그쳤던 여객분담률도 고속철이 도입되면 30%선까지 증가하게 된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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