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미 있는 한·중·일 북핵 조율, 실천이 관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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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은 북한 핵문제와 관련, 주목할 만한 논의가 벌어졌다. 며칠 전 평양을 방문했던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북한은 6자회담에 반대하지 않으며, 미국은 물론 한국·일본과도 관계 개선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했던 ‘그랜드 바긴’에 대해서도 원칙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토야마(鳩山) 총리도 일본의 납치자 문제 해결이 포함되는 것을 전제로 그랜드 바긴 제안에 적극 동의했다. 무엇보다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도 다시 한번 강조했다. 6자회담의 교착상태가 길어지는 가운데 열린 이번 회담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한층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에 더해 실무급 북·미 대화도 열릴 것으로 보여 북핵문제 해결을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급변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이 원 총리를 통해 6자회담에 대해 보인 유연성은 기존 입장보다 진전된 것이어서 바람직하다. 또 한·미·일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언급도 일단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구체적인 의지표명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결국 원 총리가 전하는 북한 입장은 아직 핵문제 해결 전망을 낙관케 하는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이 한·미·일과의 협력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핵포기 의사부터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 핵을 들고 위협하면서 관계 개선을 희망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라는 점을 북한은 유념해야 한다.

중국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북핵문제 해결의 중재자 역할을 한층 더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중국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이 과연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만큼의 적극적인 해결 노력을 펴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다. 북핵문제는 국제 평화질서에 대한 북한의 정면 도전으로 봐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중국의 최근 북핵 관련 행보는 ‘문제의 해결’보다 ‘충실한 중재’에만 주력한다는 느낌마저 있다. 북핵 해결을 위한 중국의 보다 건설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이 대통령의 그랜드 바긴 제안은 이번 회담을 통해 성과를 거뒀으나,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중국은 그랜드 바긴에 대해 일정부분 이해를 하면서도 “북·미 간 진지하고 건설적인 대화는 지지한다”는 등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런 중국의 입장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초미의 과제다. 또 미국과의 정책조율에도 틈이 생기지 않도록 해 미 국무부 차관보가 ‘다른 얘기’를 하는 혼선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결국 이번 3국 정상회담에선 북핵 대처에 관한 기본적인 조율은 됐으나, 말 수준의 차원인 것으로 본다. 이번 합의 내용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3국은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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