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제하 '빨래'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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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처럼 희디 흰 것을 여성들에게만

전담시킬 수가 없다. 마치

발바닥까지 바랜 듯이

우쭐한 기분이므로

남자들도 때로 빨래를 해보지 않으면 안된다

나로서는

백 여덟번을 정식으로 결혼을 하고

백 여덟번을 정식으로 이혼을 해도

통째 깨끗해 질 수는 없다.

……

참으로 윤회가 사실이라면

나로서는, 죽어서

빨래 같은 것이 한번 되어보고 싶다.

- 이제하 (李祭夏.61) '빨래' 중

1958년 미술대 학생 한명이 시단에 나왔다.

이어 시와 함께 소설도 발표하기 시작했다.

시.서.화 삼절을 말하던 옛시절의 예술가가 이렇게 신나게 이어지고 있었다.

진작에 무르녹아버린 그의 자동기술 같은 그림들도 여간 흐물거리는 매혹이 아니었다.

여기에 빨래의 그 청정성에 대한 동경이 감각적으로 그려졌다.

빨래터 풍경. 빨래가 바람에 날리는 풍경은 종교 이상이다.

그런 빨래 자체가 되고 싶은 시심이 새틋하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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