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독립 선택한 동티모르의 앞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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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달 30일 실시된 동티모르 주민투표의 결과는 78.5%의 압도적 다수가 독립을 지지한 것으로 어제 발표됐다.

이런 결과는 99% 가까운 놀라운 투표율에서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

이로써 17세기 이래 3백년 이상 강대국들에 의해 번롱 (飜弄) 돼온 동티모르는 마침내 독립국가의 길을 걷게 됐다.

특히 지난 76년 인도네시아에 강제 합병된 이래 20만명이 희생된 유혈의 땅 동티모르에 평화의 싹이 움트는 계기가 마련됐다.

그러나 주민투표에서 독립지지파가 승리했다고 해서 곧바로 독립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우선 오는 10월 인도네시아 국회에서 동티모르 합병을 무효화하는 헌법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

현재 인도네시아 국회엔 동티모르 독립을 반대하는 강경파가 다수 포진하고 있어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강경파는 동티모르 독립이 인도네시아 다른 지역의 독립투쟁을 자극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인도네시아 잔류를 주장해온 자치지지파의 반발을 해결하는 것이다.

기득권 세력인 이들은 그동안 독립지지파에 대해 무장테러를 감행해왔으며, 투표결과가 독립지지로 나타나면 내전이 불가피하다고 위협해왔다.

한편 주민투표에서 승리한 독립지지파의 자치지지파에 대한 보복도 우려된다.

자치지지파 주민 수만명의 탈출이 벌써 시작됐다는 외신 보도도 있다.

이 상황에서 시급한 일은 치안을 확보하는 일이다.

동티모르 주둔 인도네시아군 2만명은 철수에 앞서 우선 치안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유엔은 평화유지군 (PKF) 을 신속히 파견, 평화유지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인도네시아 정부와 독립지지.자치지지 양파 지도자들간에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도 긴요한 일이다.

이처럼 숱한 난관이 가로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티모르의 장래는 희망적이다.

가장 큰 재산은 독립을 위해 굽히지 않고 싸워온 동티모르인들의 굳은 의지다.

경제적으로도 석유.커피.목재.대리석 등 천연자원이 풍부해 경제적 자립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

국제사회는 동티모르가 홀로 설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히 과거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지배를 묵인해온 미국.호주 등 주변국가들은 도덕적 책임감을 느끼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세계역사는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가장 뚜렷한 움직임은 민족.국가의 통합과 분열의 움직임이다.

민족의 의사에 반해 강제 분열된 국가는 통합되고, 민족의 의사에 반해 강제 통합된 국가는 분열하고 있다.

동티모르는 강제 통합에서 벗어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독립의 길로 가고 있다.

동티모르 사태를 바라보면서 강제로 분열된 우리 민족이 통합될 날은 언제일까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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