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택지개발지구 23곳 지정후 2년 넘도록 방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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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된 뒤 2년 이상 방치된 지역이 전국 23개 지구에 서울 여의도 면적 (89만평) 의 10배가 넘는 9백16만평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되면 토지 소유주의 건물 신.증축 행위가 전면 금지되며, 토지보상은 개발계획이 수립된 뒤 이뤄진다.

이 때문에 보상은커녕 장기간 재산권 행사도 못한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23개 지구중 일부는 지구지정 자체를 취소하거나 지구면적을 크게 줄이는 방안까지 추진되고 있어 앞으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 사업추진 실태 = 지난 94년 10월에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된 경남 김해시 진영읍 진영리.여래리 일대 69만평의 경우 5년이 다 되도록 아직까지 개발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르면 기존 지구의 경우 5년 (99년 4월 이후 지정된 지구는 2년) 이 넘도록 개발계획을 수립하지 못하면 지구지정 자체를 취소하도록 돼있다.

사업시행자인 토지공사 관계자는 "지구지정 당시 주택수요가 충분히 있을 것으로 판단, 2만5천명을 수용할 예정이었으나 실제 이보다 훨씬 수요가 적은 것으로 나타나 사업이 늦어지고 있다" 고 밝혔다.

이에 따라 토공은 사업시행 대상 면적을 당초 지구지정 면적의 27.5%인 19만평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95년 2월에 지정된 강원도 홍천 연봉지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인구가 10만명도 안되는 지역에 지자체와 토공이 잇따라 3군데나 지정하는 바람에 수요가 없다는 이유로 사업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96년 4월에 지정된 광주 수완지구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토공은 무려 2백45만평을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했는데, 지난해 실시한 타당성 용역결과 주택수요가 절반밖에 안되는 것으로 조사돼 개발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

주민들은 "3년이 넘도록 재산권 행사를 못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며 "하루 빨리 개발하든지, 지구지정을 전면 해제하든지 결정을 내려달라" 고 요구했다.

◇ 지연 시유 = 무엇보다 토공이나 지방자치단체 등 사업시행자가 건설교통부에 지구 지정을 요청하기 전에 실시한 타당성 조사가 부실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의 주택 수요와 주택 보급률.성장 가능성 등을 조사한다지만 사업 시행자들이 지역발전을 내세워 무리하게 요청한 결과다.

토공 관계자는 "주택 보급률을 높인다는 정부시책에 호응하기 위해 택지를 우선 확보하고 보자는 식으로 과다 지정하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고 시인했다.

◇ 대책 = 전문가들은 지구지정 이전에 해당 지역 주민들에 대한 철저한 시장조사를 거쳐 수요를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주현 (曺周鉉.부동산학) 건국대 교수는 "주택보급률 등 통계에 의한 수요 판단은 과학적인 조사가 되지 못한다" 며 "주민들의 경제적 여건과 주택구입 가능성 등 설문조사도 함께 해야 한다" 고 말했다.

택지개발의 경우 지구지정에서 사업착수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보다 장기적 안목의 수요예측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이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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