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홀대 받은 아랍 영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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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역도 무제한급 결승이 열린 26일 새벽(한국시간) 니케아 올림픽 역도경기장. 2000년 시드니에 이어 올림픽 2연패를 확정한 호세인 레자 자데(26.이란)가 용상 마지막 시기에서 263.5kg의 바벨을 번쩍 들어올렸다. 자신의 용상 세계최고기록(263.0kg)을 경신한 순간 그는 두 손을 들어 "알라"를 크게 외친 뒤 바닥에 넙죽 엎드려 관중에게 큰절을 했다. 이란 응원단은 국기를 흔들며 환호했고, 그리스 관중도 '세계에서 가장 힘센 사나이'에게 큰 박수로 경의를 표했다.

▶ 호세인 레자 자데가 금메달과 함께 코란을 들어보이고 있다. [아테네 AP=연합]

그러나 기자회견의 분위기는 딴판이었다. 유럽과 미국 기자들이 대부분이었던 회견장에서 간단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어 "이번 올림픽 역도 경기에서 제기된 도핑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물론 역도에서 5명이 금지약물 양성반응을 보였고, 메달 박탈 사례도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방금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올림픽 챔피언이 된 선수에게 합당한 질문은 아니었다. 영어-그리스어-아랍어 통역을 거쳐 나온 대답은 "나는 잘 모르겠다"였다.

그러자 한 기자가 또 똑같은 질문을 했다. "도핑에 대해 코멘트를 해 달라." 레자 자데의 얼굴이 굳어졌다.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다. 급기야 이란 팀 관계자 한 명이 다가와 아랍어 통역과 함께 어떻게 대답할지에 대해 의논했다.

그는 "우리 종교(이슬람교)에서는 그런 행위(약물복용)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선수 개개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10분간의 기자회견 동안 무려 6분간 도핑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서방 기자들은 '당신도 혹시…'라는 전제를 깐 듯한 태도를 보였다. 평화의 제전에서도 아랍의 역도 영웅은 이렇듯 '다른 대접'을 받고 있었다.

정영재 스포츠부 기자

*** 바로잡습니다

◆8월 27일자 8면 취재일기 ‘홀대받은 아랍 영웅’ 중 이란은 아랍이 아니기에 바로잡습니다. 이란은 지역적·종교적인 면에서 중동의 다른 아랍 국가와 유사하지만 인종과 언어에서 다릅니다. 아랍 국가는 말 그대로 아랍인들로 구성된 국가를 일컫는 말입니다. 주한 이란대사관 아크바르 함사예 모가담 문화담당 서기관은 “이란은 아리안족인 페르시아의 후손으로 이란어(페르시아어)를 쓰나 다른 아랍 국가는 아랍어를 쓰는 셈족”이라고 알려 왔습니다. 취재일기 중 ‘아랍어 통역’ 부분도 ‘이란어 통역’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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