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NLL 무효화 선언을 보고…] 유병화 고대 법대학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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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남북한간에 50년 가까이 존중해 온 북방한계선 (NLL) 을 지난 6월 침범했던 북한측이 이번에는 이러한 북방한계선을 '무효화' 한다면서 서해 5개 도서군을 모두 포함해 새로 '해상군사통제수역' 을 설정했다고 억지주장을 했다.

북한의 주장을 들어보면 너무 황당해 법적으로 무식한 것인지, 무모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우선 남북한간에 준수돼온 서해 분계선은 단순한 해양경계선일 뿐 아니라 휴전협정 이행을 위한 군사분계선이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국가들간에 적용되는 해양경계선보다는 훨씬 구체적이고 특수한 법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남북한간에 무력충돌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물리적 격리를 내용으로 하는 중요한 법적 장치다.

특히 이러한 무력충돌 방지를 위한 분계선은 1953년 휴전협정 체결 당시, 한반도 전체의 해상 수역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던 한국 (유엔) 측이 일방적으로 북한 주변수역을 북한측에 양보함으로써 성립한 것이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더구나 현재의 서해수역은 1950년 전쟁 전에도 한국의 관할하에 있었다.

다시 말해 속초 등 강원도 북부지방은 전쟁을 통해 한국측이 확보한 것이지만 옹진반도 주변수역은 휴전협정 체결시 우리측이 일방적으로 북한측에 양보한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가 "북방한계선은 미군측이 조선 정전협정과 국제법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우리 영해에 그어놓은 비법적 선이다" 고 주장한 것은 그야말로 근거없는 억지다.

둘째, 무력충돌 방지를 위한 군사분계선은 정상적인 국가간의 해양경계선과는 달라 양측의 자유로운 통행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 국제사회의 확립된 관행이며 상식이다.

그러므로 남북한간의 서해 분계선을 일반 해양법상의 경계선과 비교해 분석하려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다.

셋째,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의 15조나 74조도 특정 수역의 특수한 사정에 따라 고유한 경계선 획정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특히 북방한계선은 1953년 휴전협정상의 원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설정돼 50년 가까이 확립된 관습법이며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명문화한 특별법상의 제도다.

넷째,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분계선은 이러한 확립된 법제도를 완전히 무시할 뿐 아니라 서해 5개 도서군의 존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법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억지 주장이다.

법적 근거가 있는 것으로 가장하기 위해 남북한의 적당한 지점을 연결해 등거리선을 그은 것처럼 주장하지만 검토할 가치가 없는 주장이다.

북한이 "문제 토의를 회피하려는 미군측의 처사는 조선 정전협정에 따라 주어진 자기들의 권한과 의무를 포기한 것" 이라고 주장한 것도 성립될 수 없다.

억지를 펴는 데 무슨 협상을 한다는 말인가.

끝으로 북한은 '해상군사통제수역' 을 설정한다고 하는데 그 법적 근거나 내용이 없는 억지 주장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북한 주장은 법적인 주장이기보다 정치적 선전이며 이러한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북한의 존재가 참으로 심각한 위협적 존재였다면 이는 북방한계선을 둘러싼 시비 정도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반대로 북한의 존재가 더 이상 심각한 위협이 아니라면 공연히 금융시장에 불안이나 가해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았으면 한다.

또한 정부 당국자들도 경솔하게 북방한계선이 남북한 협의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실언을 해 북한이나 국제사회에 오해를 주는 일이 없기를 당부한다.

유병화 고대 법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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