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세상 첫번째 이야기] 다시 신들메를 고쳐 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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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나의 제자들아!

복자여고 3학년 백합반 학생들이 박지성 담임교사(가운데 꽃다발을 들고 있는 사람)와 환하게 웃고 있다. [복자여고 제공]

수능 시험일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너희들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니. 요즘 들어 더욱 핏기 없는 너희들 얼굴을 보고 실없는 농담을 던져 보곤 하지만 안타까움만 더해질 뿐이다. 이러한 마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해 몇 마디의 말을 전하고자 한다.

첫째는 초지일관(初志一貫)의 자세를 버리지 말라는 것이야.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해주었던 이야기 기억나니? 성적은 생각만큼 오르지 않고 가정 형편도 어려워졌던 고등학교 시절, 대학 4년간 후회 없이 공부하고도 실패의 쓴 잔을 마셔야 했던 그 순간. 그런 어려움에 낙담하여 내가 세운 뜻을 포기했더라면 아마 지금의 나의 모습은 없었으리라 생각되는구나.

수능시험의 총정리에 해당하는 이 시점에서 너희 모두에게 요구되는 덕목도 다름 아닌 초지일관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출가승의 초발심(初發心) 자세로 돌아가 느슨해진 신들메를 고쳐 매어 보자꾸나.

둘째는 비움으로 충만함을 간직한 대나무를 배우라는 것이다. 어느 서책에서 본 글이다마는 대나무가 하늘을 찌르는 듯한 높이를 간직한 채 푸르름을 유지하는 것은 마디마디의 속이 비어 있기 때문이라는구나.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대나무의 마디 속처럼 마음을 비우는 공부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부정과 실의. 후회와 참담함을 버리고 긍정과 희망, 충만과 희열로 단단히 무장된 결의에 찬 너희들의 모습이 보고 싶구나.

사랑하는 나의 제자들아! 수능시험에서 후회의 한숨을 줄이는 방법은 단 하나 젖 먹던 힘까지 보태 용맹정진(勇猛精進) 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방심후의 결과에 뒤돌아 서서 후회의 눈물을 흘리기 보다는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 눈곱만큼의 아쉬움이 묻어있는 미소 진 모습이 보기도 좋지 않을까?

나의 가슴에 가득 채워도 모자람이 없는 제자들아! 2009년 11월 12일 수능시험이 끝난 우리 교실 안이 환희의 박수소리와 열광의 축제 한마당이 되기만을 선생님은 빌고 또 빌 뿐이다. 선생님은 너희들을 믿는다. 복자여고 3학년 백합반 파이팅!

박지성 교사 (복자여고 3학년 백합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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