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어디로 가나] 누가 이겨도 내전은 필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딜리 (동티모르) =진세근 특파원] 독립 여부를 묻는 투표가 비교적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그러나 동티모르는 지금 내전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

높은 투표율로 패배가 확실시되는 민병대와 잔류파들이 투표결과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독립파는 독립반대 민병대가 계속 폭력을 사용할 경우 무력으로 진압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투표 이전과 마찬가지로 '투표 이후' 에도 문제는 여전히 잔류파와 민병대다.

이들은 그동안 각종 기득권을 누리면서 동티모르를 통치해온 세력이다.

만일 독립파의 승리를 인정한다면 이들이 설 땅은 더 이상 없다.

설사 독립파와 유엔이 이들을 '사면' 한다 하더라도 20여년간 시달려온 동티모르인들이 그들을 온전히 내버려둘 가능성은 희박하다.

투표결과를 받아들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절박한 처지라는 얘기다.

이미 민병대측은 31일 공항과 해변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는 등 딜리 주민들의 탈출봉쇄 작전에 들어갔다.

반면 독립파들은 승리가 사실상 확인된 마당에 반독립파가 계속 폭력을 행사할 경우 부득이 '반격'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그동안은 투표 연기의 빌미를 줄 우려가 있어 민병대에게 저항하지 않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만일 투표 승리가 확인될 경우 이젠 '정통성 있는 정부' 가 되기 때문에 폭력에 대한 '진압' 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양측의 입장이 이처럼 팽팽하게 유지되면 내전은 필연이다.

유엔평화유지군 등 물리적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투표 이후의 동티모르가 여전히 혼돈 속을 헤맬 것으로 예상할 수밖에 없다.

85만명의 주민 가운데 45만여명의 유권자가 등록한 이번 투표의 참여율은 98.6%인 것으로 유엔당국은 밝혔다.

개표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결과는 오는 6일 동티모르 주도 딜리와 뉴욕에서 유엔이 동시에 공식발표할 예정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