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여자마라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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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대 올림픽은 남자들만의 잔치였다.

참가선수들은 모두 나체였다.

그래서 여자는 출전은 물론 구경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이를 어긴 여자는 낭떠러지 끝에 세워 아래로 떨어뜨리는 잔혹한 형벌에 처했다.

근대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도 올림픽이 남자들만의 행사로 치러지길 바랐다.

쿠베르탱은 여자의 역할은 남자선수에게 찬사와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봤다.

쿠베르탱의 '고결한 이상' 속엔 여자란 존재는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쿠베르탱의 이같은 생각은 올림픽이 시작되면서부터 도전받았다.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때 그리스 여인 멜포멘은 마라톤에 참가신청을 냈다가 거절당하자 비공식적으로 참가해 마라톤평원에서 아테네까지 40㎞를 4시간30분에 달렸다.

우승자보다 1시간30분 뒤진 기록이었다.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 여자테니스가 처음 채택됐고, 수영.스케이트가 뒤를 이었다.

그러나 보수파의 저항이 거셌다.

쿠베르탱은 "스케이트를 타는 여성의 모습이야말로 지성인이 볼 수 있는 가장 추한 장면" 이라고 비판했다.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에선 여자수영이 금지됐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막을 수 없었다.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은 육상 5개 종목에 여자의 출전을 허용했다.

60년대 들어 여자종목이 크게 늘어났다.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선 전체 참가선수의 17%가 여자였다.

하지만 육상 장거리는 여전히 금단 (禁斷) 의 땅이었다.

여자는 신체적으로 장거리를 달리기에 부적합하며, 여자가 달리는 모습은 아름답지 못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여자마라톤은 일종의 인권운동이었다.

66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를 신청했다 거부당한 깁슨양 (孃) 은 용감하게 남자들 틈에 섞여 달렸다.

보스턴 마라톤은 74년 여자선수의 참가를 허용했으며, 78년 애틀랜타에선 세계 최초로 여자들만의 마라톤대회가 열렸다.

여자마라톤이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다.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마라톤에서 북한의 정성옥 선수가 우승했다.

그녀는 이번 대회를 대비해 개마고원에서 매일 35~40㎞를 달렸다고 한다.

경기를 마친 후 "나는 지금 풋내기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세계인들이 나를 더 잘 알 수 있도록 하겠다" 고 당차게 말했다.

북한엔 비슷한 실력의 선수가 5명이나 있다고 한다.

내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북한 여자마라톤이 돌풍을 일으킬지 주목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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