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전수용 '임종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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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생이 무슨 일로 갑옷 입었나

먹은 마음 다 틀어지니 한숨뿐이네

통곡하노니 조정에서 날뛰는 놈들의 꼴이여

해외에서 침노한 적 어찌 말하랴

백일 아래 흐르는 강물소리 슬픈 소식 울먹여

창천에 눈물 막히니 실버들 이슬비 내리네

이제야 떠나온 영산포 못가게 되니

두견새 되어 피울음 울며 돌아가리

- 전수용 (全垂鏞.1878~1910) '임종시'

의병장 해산 전수용. 전북 임실의 유생이던 그는 의병을 일으켜 호남 일대에서 왜군과 싸우다 소위 남한대토벌 작전 때 영산포에서 생포된다.

대구감옥에서 처형되는데 이 시는 사형 당일 세상을 하직한 울분을 그대로 표출한다.

죽음이 의리이고 삶이 곤궁한 시절의 순수한 우국으로부터 우리는 너무 멀리 떠내려와 있다.

외적보다 내적에 더 분개하는 선열의 얼굴을 그려본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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