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서 편법 모의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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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울 H고 3년 金모 (18) 군은 지난 방학기간 내내 개학 직후 치러질 모의고사 준비에 매달려야 했다.

金군은 "지난 학기에 네번의 모의고사를 치렀는데 성적이 좋지 않아 방학동안 학원에서 집중적으로 시험준비를 했다. 독서나 봉사활동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고 말했다.

학생들의 입시부담을 덜고 과외학습의 과열을 막기 위해 교육당국이 일선 학교의 모의고사 실시 횟수를 제한하고 있지만 일선에선 지켜지지 않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행정명령을 통해 사설 입시기관이 주관하는 전국 단위의 모의고사를 고교 3학년은 연간 2회, 2학년은 1회, 1학년은 아예 보지 못하도록 지시하며 "위반하는 학교는 학교장을 문책하겠다" 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일선 학교들은 입시기관에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모의고사를 신청하도록 하는 '작전' 까지 동원해가며 학생들에게 시험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지난 학기 5개 사설 입시기관이 번갈아가며 실시한 전국 모의고사 응시생은 3학년 재학생만 40만명이 넘었다.

일반계 고등학교 3학년생의 90% 가까이가 거의 매달 모의고사를 치른 셈이다.

지난 학기 중 두 차례 실시됐던 고교 1학년 모의고사도 10만여명씩 응시했으며, 개학 직후인 8월 26, 27일에 실시된 시험에도 전국에서 45만명의 고교생이 참가했다.

단속을 피하기 위한 편법도 다양하다.

입시기관과 교사들에 따르면 일부 학교는 인근 입시학원의 도움을 받아 학생들을 학원생으로 둔갑시켜 단체 응시하도록 하고 있다.

입시기관에 전산처리를 맡기지 않고 시험지만 제공받아 자체 채점을 하는 학교도 있다.

학생들에게 학원을 지정해주며 모의고사를 본 뒤 성적표를 받아오도록 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육부 학교정책과는 "일부 학교를 적발해 냈지만 문책할 근거가 마땅치 않다" 는 입장이다.

학교장들도 "모의고사를 보지 않으면 학부모들이 거세게 항의해 어쩔 수 없다" 고 해명했다.

서울시청소년종합상담실 이규미 (李揆美.43.여) 실장은 "학업성적 비중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입시 추세에 비춰 빈번한 모의고사 실시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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