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아시아 중시 외교’ 시동 걸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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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오카다 일본 외상이 한·중·일 공통 역사교과서를 언급한 것은 하토야마 정권의 새로운 외교안보 정책 시동을 의미한다. 오카다 외상은 이날 강연에서 “과거 전쟁에서 피해를 본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며 무라야마 담화의 답습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어 “과거 정권에서 무라야마 담화에도 불구하고 이에 반하는 발언을 하는 각료들이 있었는데 그들에 대해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 든다”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까지 언급했다.

일 정부는 역사왜곡 문제와 관련, 1990년대부터 한국·중국 등 주변국의 항의를 받아왔다. 그래서 일본은 한국과 중국 두 나라와 각각 역사공동연구를 추진해왔다. 2002년 시작된 한·일 역사공동연구의 경우 양국 교수 등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위원회의 진도는 현재 양국이 공통의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교과서 편집이 이뤄질 수 있도록 양국이 노력한다는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중국의 반발 때문에 연구위원회를 설치·운영해 왔지만 역대 보수 자민당 정권하에서 ‘공통 역사교과서’는 절대 실현될 수 없는 목표였던 것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의 외교정책 브레인인 야마구치 지로(山口二郞) 홋카이도(北海道)대 교수는 “오카다 외상의 발언은 정권교체가 국제관계 변화로 이어진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겠다는 것”이라며 “이는 아시아 국가의 믿음을 얻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이어 “예상보다 일찍 이 문제가 언급된 것은 일본 내 보수세력의 공격을 감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시아 외교를 민주당 정권의 상징적인 테마로 삼아 여론을 만들어가겠다는 각오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산케이(産經)신문은 “9일 한·일 정상회담과 10일 한·중·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온 오카다 외상의 발언으로 적지 않은 파문이 예상된다”며 보수파의 반발을 예고했다. 한편 교육과학기술부 이성희 학교자율화추진관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제안”이라면서도 “2002년 5월 발족한 한·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편향된 시각을 가진 일본 측 위원의 거부로 쟁점 사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저조한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 양측이 합의할 수 있는 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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