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미사일 '空砲' 즐기는 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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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동아시아라는 장기판 위의 말 (馬) 이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장수도 뛰고 참모도 뛴다.

북한을 달래 미사일 시험발사를 막기 위해서다.

다음달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과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그리고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 (小淵惠三) 총리가 삼각정상회담을 여는 것부터가 이례적이다.

한.미.일 지도자들이 북한 달래기라는 동일한 목적을 갖고 무릎을 맞대고 지혜를 모으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일본에서는 한.일 두나라 외무장관들이 이미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와 발사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정책공조를 논의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채찍이고 당근이고간에 새로운 게 나올 여지가 없을 만큼 이미 협의가 빈번했지만 북한의 침묵이 워낙 불길하다 보니 외무장관들이 잠자코 있을 수가 없다.

아연 활기를 띠는 장기판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이 베이징 (北京)에서 열리는 한.중 국방회담이다.

한국동란 때 총부리를 마주대고 싸운 적국의 국방장관들이 휴전후 46년, 수교후 7년만에 처음으로 만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한.중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남북한과 중국의 3각관계의 질적 변화를 실감한다.

더군다나 한국과 중국이 군사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거의 최상의 협력관계를 유지한다고 해도 북한과 중국은 여전히 동맹관계에 있어 남북한이 전쟁을 한다고 가정하면 중국은 북한편에 서서 참전해야 하는 처지다.

아무리 국가이익 우선의 시대라고 해도 북한과 중국의 감상적인 혈맹관계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

중국이 한국과의 국방장관 회담에 응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중국은 고위급의 군사분야 인사를 몇차례 북한에 보내 한.중 국방회담이 북한과 중국의 전통적인 군사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임을 거듭 다짐했다.

한.중 국방회담이 열리는 시기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여부와 관련해 민감한 시기라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그러나 중국은 이번 국방회담과 관계 없이 이미 미사일 발사 문제에 관한 입장을 북한에 밝혔을 것이고, 특히 중국 자신이 중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한 처지여서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자체를 적극적으로 만류할 도덕적 권위를 잃었다.

한.중 국방회담이 환영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훨씬 장기적인데 있다.

중국은 미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연구.개발하려는 전역미사일방위 (TMD) 체제에 한국의 불참을 확인받기를 바라고, 대만문제에 관한 '하나의 중국' 의 입장확인,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질서를 미국.일본 주도에서 독립시키려는 구상에 한국의 협력을 바라는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는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중국형의 개혁모델을 북한에 '수출' 하는 노력을 강화하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덩샤오핑 (鄧小平) 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개혁은 호떡집 간판을 걸고 피자를 파는 것에 비유된다.

북한이 중국을 모방해 냉면집 간판을 걸고 샌드위치를 팔게 된다면 북한이 야기하는 문제의 대부분은 해결될 것이다.

북한은 지금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미사일 시험발사에 관한 침묵의 대가는 상한가 (上限價) 를 치고 있다.

제 나라 백성의 먹는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허약한 나라가 미사일 발사준비설 (說) 하나로 강대국 지도자들을 이리 뛰고 저리 뛰게 만드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우리는 '미사일 이후' 를 보아야 한다.

미사일에만 매달리면 북한의 게임에 말려 미사일문제는 항상 재발한다.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는 동북아시아의 장기적 안정의 구조가 논의돼야 하고, 한.일 외무장관들과 한.중 국방장관들은 한반도의 평화정착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최악의 경우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다고 해도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여유가 필요하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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