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대통령은 동네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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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통령은 동네북인가' '대통령은 한 임기만 쓰고 내팽개치는 1회용 소모품인가' - . 다름아닌 대통령제의 본고장 미국에서 줄기차게 제기되는 의문이다.

대통령이 영웅이기는커녕 국민들의 '입방아' 거리로 희화화 (戱畵化) 된 지 오래다.

미국의 빌 클린턴은 대통령으로서 능력은 있지만 국민들의 존경은 못받는다.

투병 중인 러시아의 옐친은 정적들로부터 대통령자리 보존에 여념이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황혼' 이자, 그저 그런 대통령들의 수난 (受難) 시대다.

대통령학의 권위 토머스 크로닌은 이렇게 반문한다.

"미국 국민들은 4년마다 참신한 슈퍼스타 대통령을 주문한다. 조지 워싱턴의 판단력에, 제퍼슨의 총명, 링컨의 천재, 루스벨트의 정치적 지혜, 거기에다 존 F 케네디의 상큼한 젊음까지 요구한다.이런 슈퍼대통령이 이 지구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한마디로 과잉기대다.

감당할 수 없는 과업과 책임을 지워 그를 짓누르고,끝내는 그를 파괴시킨다.

이를 자초 (自招) 한 대통령 자신, 그를 나무라는 국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진단이다.

대통령의 권위가 추락되고, 급기야 '동네북 신세' 로 전락하게 된 배경은 네 갈래로 설명될 수가 있다.

첫째, 강력한 대통령은 위기의 산물이다.

세계대전이나 냉전 등 전쟁때일수록 대통령의 권능은 막강해지고 국민들도 순순히 따른다.

그러나 위기상황이 가시면 국민적 결집력이 약해지면서 대통령의 리더십도 약화된다.

둘째, 영웅은 거리를 두거나 베일에 가려져야 존경심이 생기고 숭배도 하게 된다.

현대의 대통령들은 '이웃집 아저씨' 처럼 사생활의 일거수 일투족과 개인적 약점이 미디어에 그대로 노출된다.

친근감은 더 생기지만 경외의 대상이 되기는 힘들다.

셋째, 현대의 국정운영은 개인적 리더십보다 시스템에 갈수록 좌우되면서 대통령 개인의 입김은 약화되고 때로는 시스템의 정상적 작동을 방해하는 존재로 인식되기도 한다.

여기에 역설적이고 상호모순적인 국민적 여망과 기대가 가세한다.

비전과 결단력, 때로는 강한 카리스마로 이끌어줄 것을 기대하면서도 대통령의 권한이 강력해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리더십을 주문하면서도 협력이나 추종은 꺼린다.

이런 국민들 요구 앞에 대통령이 '중심잡기' 가 쉽지 않다.

소신있게 밀어붙이다가는 '독재자' 소리 듣기 십상이고, 대중인기에 영합해 약속을 남발하다 '거짓말쟁이' 로 질타당해 무너지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대통령 때리기' 는 국민들이 웃고 즐기는 '심심풀이 게임 (national pastime)' 이 돼버렸다.

살아 있는 전직대통령 가운데 두 분은 쇠고랑을 찼고, 한 분은 '나라를 망친 대통령' 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국민들은 책임이 없는가.

지도자의 수준은 곧 그 사회 및 국민 수준을 의미한다면 대통령 때리기는 누워 침뱉기와 뭐가 다른가.

남의 떡이 커 보이듯 남의 나라 대통령들은 훌륭해 보인다.

그러나 뉴딜의 지도자 루스벨트도 개혁과정에서 '독재자' 소리를 들었고, 뉴프런티어의 기수 케네디의 역사적 평가도 그저 그렇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는 훌륭한 도덕적 지도자였지만 국가경영을 몰라 '경영자' 음베키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했다.

우리의 대통령들이 그토록 형편없었다면 이 나라가 이만큼이나마 유지돼 올 수 있었을까. 거꾸로 우리 사회가 그만큼 시스템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대통령 개인에 모든 것을 기대는 국민적 심리가 권력의 집중화와 '대통령병 환자' 를 낳고, 그럴수록 시스템의 작동은 방해받는다.

바야흐로 시대는 '슈퍼대통령' 이 아닌 효율적 국가경영자를 요구한다.

대통령에 대한 과잉기대도, 전직 (前職) 들 때리기도 이쯤해서 멈출 때가 됐다.

그들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우리 사회의 품에 안아야 한다.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다.

역대 대통령들이 나라 안팎으로 조롱감이 돼서야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노태우 (盧泰愚) 대통령의 민주화에의 공헌과 전두환 (全斗煥) 대통령의 인재 용병 및 국가관리 능력은 바깥사회가 인정한다.

'3金' 정치는 폐단도 많았지만 우리 사회가 이만큼 민주화된 데는 그들의 공로도 무시못한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8.15경축사에서 '성공한 대통령' 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성공한 대통령은 주어지거나 개인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 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만들 때 가능하다.

깎아내리고, 동네북처럼 때려서 돌아오는 것은 우리들의 자기비하 (卑下) 요, '그 대통령에 그 국민' 의 악순환만 되풀이할 뿐이다.

변상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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