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또 정치에 발목잡힌 방송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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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끝내 새 통합방송법의 국회 통과는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권력의 '외풍' 을 차단하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방송을 만들겠다는 의지는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국회 문화관광위는 지난 11일 법안심사 소위를 3차례 열고 새 방송법에 대한 막판 조율을 벌였으나 각 정당의 이해에 걸려 결렬되고 말았다. 국회는 13일 마감되는데 담당위원회에서도 통과 안돼 본회의 통과는 물 건너간 셈이다.

지난달 방송사 노조는 새 방송법의 조속통과를 전제로 연대파업을 풀었다.

여권에서도 이에 합의했다. 야당도 방송위원 선임 등을 싸고 노 - 정 합의안에 반발했으나 여당에 양보하는 듯해 한 가닥 타결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예상 밖의 걸림돌이 돌출했다. KBS 경영위원회 문제다. 공동여당인 자민련이 막강한 권한을 갖게될 새 방송위원회와 별도로 KBS 경영위 신설을 주장했다.

야당도 동조했다. 공동여당에 균열이 생기면서 자민련과 한나라당이 한 목소리를 낸 것.

11명의 경영위원 가운데 5명은 방송위가, 6명은 국회가 추천하자고 요구했다.

그러나 KBS 경영위는 연초 방송개혁위원회에서도 설득력 부족으로 폐기처분됐던 항목이다.

방송가에선 KBS의 로비와 신설 방송위에서 자기 몫을 더 챙기려는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방송법이 좌초한 것으로 진단한다.

5년 동안 질질 끌어온 방송법이 정치권의 득실 따지기에 밀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비관적 얘기도 들린다.

물론 9월 정기국회가 남아있으나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정치국회' 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 새 방송법은 신생 국회의 과제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방송독립, 지상파 방송 위상정리, 위성방송.케이블 같은 뉴미디어의 교통정리 등 시급히 해결해야할 숙제가 산적한 한국방송. 이제는 방송계 내부보다 정치권이 책임을 져야한다.

과연 방송의 주인인 국민을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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