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령'서 이성주의자 열연 정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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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해묵은 연예계의 농담 중엔 '배우의 변신은 무죄' 란 말이 있다. 극 중에서 수많은 타인의 인생을 살면서 늘 새로워져야 하는 배우의 숙명을 빗댄 것이다.

어찌보면 이른 나이라고 할 수도 있는 20대에 우리 젊은이들의 표상으로 군림하고 있는 스타 정우성 (27) 또한 '변신' 에 대한 강박관념 같은 것을 갖고 사는 천생 배우다.

지난 5일의 인터뷰에서 정씨는 이를 "배우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 이라고 말한다.

사실 지난달 31일 개봉돼 한창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국내 첫 참수함 영화 '유령' 을 보면 정씨의 그 '책임론' 이 한낱 빈말이 아니란 걸 알 것 같다.

'비트' (97년) 나 '태양은 없다' (99년) 등 이전 출연작에서 보여준 얼치기 아웃사이더의 티를 이 작품에서는 말끔히 벗어 던졌다.

엘리트 장교 '이찬석' 으로 출연한 그는 일본을 향해 핵미사일 공격을 불사하는 '부함장 202' (최민수) 와 맞선다.

극한 대립상황에서 보여주는 이 이성주의자의 고뇌에 찬 몸짓은 이전 '정우성' 을 까맣게 잊게 만드는 강렬한 인상으로 박힌다.

"인물에 밀착하려고 노력한 결과, 다행히 밉게 보지는 않나봅니다. '인물이 살아있다' 는 내용의 팬레터가 참 많이 오는 걸 보면 그렇습니다. "

이런 평가가 있기까지 '환골탈태' 를 향한 정씨의 노력은 남달랐다는 뒷얘기다. 제작사인 우노필름의 차승재 대표는 "수차례의 시나리오 수정 작업에 개입, 이찬석의 논리적 취약성을 보완하느라 대사 하나하나를 꼼꼼히 챙기는 그의 프로의식에 놀랐다" 고 말했다.

이게 바로 특유의 카리스마를 맘껏 발산한 최민수와의 첫 영화촬영에서도 전혀 꿀리지 않고 끝까지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됐다.

정우성의 영화 출연작은 94년 '구미호' 로 데뷔한 이후 이번이 일곱 번째. 서울에서 42만명을 동원한 '비트' 를 비롯, 대부분의 출연작이 흥행에서도 고른 성공률을 기록해 신뢰도가 높은 배우로 통한다.

그러나 그동안 연기보다는 수려한 외모로 치장된 스타성에 의존, 그저 '이미지 배우' 일 뿐이라는 평판이 없지 않았다.

정씨는 이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이제부터는 그렇지는 않을 것" 이라고 힘주었다.

"어디까지나 영화 속에 그려진 그 인물만으로 배우를 평가해 주었으면 합니다. " 결국 '이미지 배우' 란 명칭도 나름대로 영화속 역할에 몰입한 결과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우성은 유난히 여성팬이 많은 배우로 소문나 있다. 그러나 자신의 경험상 이 또한 '낭설' 이라고 한다.

'유령' 이 그렇듯 막상 영화가 개봉되면 남성팬들이 더욱 적극적이란 얘기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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