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왕'라이언 킹'] 6. 주전 굳힌 프로데뷔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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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95년 4월 15일 삼성 - LG의 시즌 개막전이 벌어진 잠실구장. '새끼 사자' 이승엽은 선발로 출전하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 있었다.

베로비치 전지훈련에서 타자로 성공적으로 전업했다고는 하지만 고교를 갓 졸업한 신인이 대선배들과 함께 1군 엔트리에 포함된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삼성이 1 - 5로 뒤지던 9회초 1사후. 우용득 감독이 타임을 불렀다. 뒷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우감독이 주심에게 다가가더니 "대타 이승엽" 을 외쳤다.

프로 첫 타석의 기회가 개막전에서 주어진 것이다. 상대투수는 백전노장 김용수. 햇병아리 이승엽에게는 벅찬 상대였다.

그러나 두려움은 없었다. 어차피 당겨진 시위였다. 이승엽의 방망이는 초구부터 돌아갔다. 파울. 마운드의 김용수도 정면승부를 피할 이유가 없었다.

2구째 이승엽의 방망이가 다시 한번 부드러운 궤적을 그렸다. 깨끗한 중전안타. '홈런왕' 의 프로 첫 걸음마였다.

이승엽은 이튿날부터 당장 주전자리를 꿰찼다. 6번타자에 1루수였다. 양준혁을 외야로, 김성래를 지명타자로 밀어냈고 당당히 주전 1루수 자리를 확보했다.

그해 이승엽은 1백21경기에 출장해 타율 0.285, 13홈런이라는 신인으로서는 수준급 성적표를 받았다.

이승엽이 1루수로 자리를 굳히자 후반기로 예정됐던 투수 전업은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타격에 재미를 붙인 이승엽에게 다시 투수를 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혼이 담긴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는 지금의 좌우명을 만들어준 팀 선배 이정훈 (현 한화코치) 을 만났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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