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하기 좋은나라 멀었다] 줄지 않은 준조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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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방공단에서 화학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A사. 지난해 하수종말처리부담금으로 50억원을 냈다.

액수가 지나치게 부담스러웠지만 공장을 돌리자니 어쩔 수 없었다.

공장시설 용량에 비해 너무 작은 하수관이 매설돼 있어 입주공장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굵은 하수관을 묻었던 것. 하수관은 기본적인 인프라 시설로 국가에서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개정 하수도법이 원인자 부담으로 돼있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돈을 부담했다.

각종 준조세에 기업의 허리가 휜다.

우선 준조세가 몇 종류나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다.

한국법제원이 최근 경비규정을 근거로 파악한 바에 따르면 부담금.부과금.예치금.공과금.사용료 등 크게 14종의 준조세가 있는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중앙부처.지방자치기관.정부위탁기관이 각각 다른 이름으로 국민에게 수백가지 준조세 부담을 지운다.

이중 절반 이상이 기업들에 부과된다.

분명한 기준 없이 여기저기서 들쑥날쑥 부과되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정체조차 불분명한 악성 규제가 되는 셈이다.

심지어 매년 얼마나 징수되는지, 또 어디에 쓰이는지 아는 사람도 없다.

해당 부처나 기관에서 징수금액을 제대로 밝히지 않을 뿐 아니라 예산.결산서나 관련백서에도 아무런 흔적이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조세연구원은 준조세 규모가 97년 기준으로 총예산의 11.4%에 해당하는 8조1천3백64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아예 근거법령조차 없는 준조세도 많다.

각종 모금이 대표적 예다.

대한적십자사가 북한에 비료 보내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던 지난 5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억원을 내겠다고 결의했다.

그러나 한달 뒤 정부가 협조요청이라는 명목으로 80억원을 할당하는 통에 갹출 계획을 다시 짜느라 법석을 떨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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