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하기 좋은나라 멀었다] 건설사 울리는 중도금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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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 수도권에서 1천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준공한 H사. 당초 37억여원의 흑자를 예상했으나 결산 결과는 1억원 흑자에 그쳤다.

2년8개월간의 공사기간 내내 계약자들로부터 받은 중도금보다 훨씬 많은 돈이 공사비로 먼저 투자되는 바람에 결국 36억여원의 이자를 물어야 했기 때문이다.

비단 H사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주택건설업체들은 현실을 무시한 분양 중도금 납부방식 때문에 금융비용이 많이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지난 78년 만들어진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제26조)' 은 총분양금액 가운데 청약금을 포함한 계약금 20%, 중도금 60%, 잔금 20%를 각각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중도금의 배분기준. 아파트의 경우 건축공정이 최상층 철근배치 완료시, 즉 건물의 골조공사가 끝난 때를 기준으로 전후 2회이상 나눠 받도록 돼있다.

결국 골조공사 완성때까지 건설업체는 중도금의 절반인 30%를 받을 수 있고 계약금을 포함하면 총분양가의 절반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8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5층 이하 아파트가 주류를 이뤘던 터라 골조공사 완성때까지의 공사비가 총공사비의 50% 수준이어서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아파트 건설여건과 제도가 크게 바뀌면서 이 규정은 업체들의 발목을 잡는 대표적 규제로 둔갑했다.

우선 땅값 급등과 초고층아파트에 대한 표준건축비 상향책정 등의 여파로 아파트가 고층화됐다.

97년 서울에서 분양된 아파트의 83.4%, 인천은 92%가 16층 이상의 초고층아파트였다.

또 자동차의 급속한 보급에 따라 주차장 기준이 점점 강화되더니 91년에는 아예 지하주차장이 의무화됐다.

땅을 더 깊이 파고 건물을 높게 세움에 따라 골조공사가 끝나는 시점이 늦춰지는 것은 당연한 일.

주택산업연구원의 최근 사례조사 결과 골조공사가 완성된 때 땅값을 포함한 공사비가 총건설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서울지역 중규모 단지 (3백50여가구 기준) 의 경우 78.8%, 경기지역 (7백90여가구 기준) 단지도 75.8%에 달했다.

수도권 10개 단지를 종합한 결과는 68.2%.그럼에도 업체들은 이때까지 총공사비의 50%만 받을 수 있으니 결국 20% 안팎의 공사비를 먼저 쓰고 금융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이러다 보니 업체들은 관련규정을 어기고 균등배분이나 몰아치기 배분 등 편법을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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