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비용전사 ’ 개념 군에 도입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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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비용 전사(Cost Warrior)’라는 말은 2기 클린턴 행정부가 국방예산 축소를 감내하며 군사태세를 유지하기 위해 고안해낸 용어다. 1998년도 미국 국방예산은 92년 대비 명목가격 기준으로 12.6%, 실질가격으로 23.2% 감소했다. 국방예산 중 장비획득 비율도 92년 22.3%에서 98년 16.9%로 하락했다. 이러한 예산 압박을 극복하면서 적정한 군사태세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비용과의 전쟁(cost war)’을 선언했다. 비용과의 전쟁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에도 지속되고 있다.

이는 우리 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군은 현재 국방개혁과 관련, 두 가지 장애요인에 직면해 있다. 첫째, 북한 핵 위협의 현실화다. 둘째, 경제위기에 따른 재정축소로 설계된 도면대로 군사력을 건설하는 데 소요되는 예산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핵 위기에 대처하는 우리 군의 대응능력을 확대하기 위해선 추가적인 예산소요가 발생한다. 그런데 예산환경은 이미 계획된 예산을 줄여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있는 것이다. 설계도면대로 국방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선 7∼8%의 예산 증액이 필요한데 이를 충족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군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예산 부족을 구실로 선진정예강군 건설을 지연시킬 만큼 우리 안보 여건이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해 대체전력을 건설해야 하고, 북핵 위협에 대비하는 독자적 방어능력도 확충해야 한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주변 국가와의 군사력 격차를 좁혀 나가야 한다. 조금은 나아지고 있지만 중기 재정여건이 갑자기 좋아질 것 같지 않다. 특히 재정여건이 좋아지더라도 노령인구 증대에 따른 사회환경 변화를 고려할 때 복지예산 증대라는 사회 압력이 국방 적정예산 확보 논리를 제한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우리 군에 요구되고 기대되는 것은 ‘한국식 비용 전사 마인드’다.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고효율 다기능’을 주장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도 취임사에서 ‘최고경영’을 강조했다.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는 군 수뇌부가 ‘고효율’ ‘최고경영’을 강조하는 것은 예산 증액 규모와 관계없이 우리가 지향하는 군사력 건설 목표를 반드시 구현하겠다는 정부 의지로 받아들인다.

이제 우리 군도 이 같은 ‘비용 전사 정신’으로 국방개혁을 지속해야 한다. 비용 전사 마인드를 국방 발전에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 군사력 건설 우선순위, 비용절감 우선순위를 잘 설정해야 한다. 군사태세와 관련하여 우리 군은 ‘매몰 가치(Sunk cost)’에 집착하는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 창군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부단히 국방태세를 발전시켜 왔다. 우리가 발전시켜 온 국방태세, 국방 인프라가 구축될 당시에는 국방목표 구현에 부합되었지만, 미래에도 그럴 것인지를 따져 봐야 한다. 해묵은 3군 균형발전 논쟁 속에 진행된 국방태세, 국방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 군살이 없는지를 비장한 마음으로 성찰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내비게이션 사용이 일반화된 여건을 고려한다면 ‘길을 안내하는 선탑 인력’은 과감하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정부가 전쟁을 수행 중인 장병들에게 비용 전사가 될 것을 요구해도 미국 정부가 안보를 경시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는 미국 국민 사이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국방예산의 고효율을 강조하는 정부를 안보경시 정부로 섣불리 비판해서는 안 된다. 넉넉하게 예산을 주지 않는 정부를 야속하게 생각하는 대신 군은 비용과의 전쟁을 통해 개혁의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 물론 정부와 국민은 재정이 허락하는 한 투자와 효과의 상관관계가 특별한, ‘국방 분야의 특별한 효율성’을 이해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