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02년 입시가 큰일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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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다음 중 전체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고귀한 삶을 산 두명은?

1) 정주영 2) 노태우 3) 예수 4) 전두환 5) 안창호. ' 서울 모 여고 1학년 중간고사로 출제된 윤리문제 중 하나다.

너무 쉬운 문제여서 학생들조차 출제의도를 의심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처럼 쉬운 문제를 내는 학교가 특정지역 특정학교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파급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겨났는가.

2002년 대입 무시험전형이 발표되면서 생겨난 일이다.

암기 위주의 수능성적 줄서기 입시행태를 벗어나 자유롭고 창의적인 학교교육의 결과에 따라 대학자율로 학생을 선발토록 한다는 정부의 교육개혁 결과다.

물론 의도도 좋고 방향도 옳았지만 현실이 이를 따르지 않으니 이런 부작용이 생겨나는 것이다.

수능시험은 자격시험으로 밀려나고 학교성적이 중요 평가자료가 된다.

이러니 학교마다 점수부풀리기에 나설 수밖에 없다.

긴급 장학관회의를 열어 석차백분율을 반영토록 적극 권고하지만 학교입장에선 가능하면 쉬운 문제를 출제해 타교보다 좋은 성적을 내놓고 싶어 한다.

여기에 학부모의 성화가 예사롭지 않으니 점수부풀리기형 출제는 거듭될 수밖에 없다.

수능성적과 학교성적 모두가 차별화되지 않는다면 대학은 어떤 잣대로 학생을 선발할 것인가.

수행평가란 게 있지만 교사 혼자 한반 50명 이상의 적성과 품행을 꼼꼼히 적을 겨를이 없다.

그래서 숙제를 내준다.

이러면 학생들의 숙제마저 대행하는 학원이 생겨난다.

이 또한 선발의 공정한 자료로 삼기 어렵다.

결국 학생들은 수능시험이나 학교시험에 신경쓸 필요도 없이 놀기만 하면 된다는 일종의 패닉현상에 빠져들 수 있다.

이래서야 교육이 제대로 되겠는가.

2002년까지는 아직도 몇해 남았으니 그때 가서 보자고 하기엔 사태가 심각하다.

지금 당장 대안을 검토하고 원칙을 새로 조정해야 한다.

먼저 학생부 작성이 제대로 정착하기까진 수능성적 반영률을 단계적으로 조정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학교성적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다고 안심할 때까진 수능 반영률을 유지해야 선발의 객관성을 살릴 수 있다.

수능을 선발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면 학교성적의 국가관리가 있어야 한다.

수능과 비슷한 형태의 국가시험을 학기마다 치러 학교성적과 병행해 평가자료로 삼는 방식이다.

입시가 임박해 허둥댈 것이 아니라 발생된 문제점을 원천적으로 해소할 대안 모색이 지금부터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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