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신문 1926~1930] '안방극장' TV 출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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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1926년 1월 27일 런던]영국 왕립 아카데미 회원들은 이날 런던 소호 지역에 자리잡은 스코틀랜드 출신 발명가 존 베어드의 연구실을 방문해 그의 실험을 지켜보고는 한결같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 앞에 놓인 인형이 무선장치를 통해 멀찍이 떨어진 브라운관 화면에 영상으로 그대로 옮겨졌던 것이다.

사진처럼 평면적이지 않고 인형에 햇빛이 비치는 부분과 그림자 부분이 선명하게 구별되는 입체적인 영상이었다.

20세기 들면서 영상을 전파에 실어 수신장치로 보내려는 집요한 노력이 현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빛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카메라와 회전 원판, 네온관으로 구성된 이 장치를 베어드는 '텔레비전' 이라고 명명했다.

주사선이 30개에 지나지 않고 초당 프레임도 10개에 그쳐 화면은 조잡한 편이었지만 장래 '영상혁명' 을 예고하는 실험인 것만은 틀림없다.

베어드는 아카데이 회원들에게 기계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면서 "언젠가는 여러분의 가정을 훌륭한 영화관으로 바꿔놓겠다" 고 약속했다.

정명진 기자

[그후…]

TV실험의 성공을 공인받은 후 베어드는 실용화에 박차를 가했다.

새로운 업적이 쏟아져 나왔다.

비디오 레코딩 (1927) ,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TV전파 전송 (1928) , 컬러TV (1928) , 대형 스크린TV (1930) , HD (고화질) TV (1937) 기술 등이 대표적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던 1946년에는 주사선이 1천개나 되는 TV개발을 구상 중이었다.

이렇게 볼 때 지난 1990년 일본에서 프레임당 주사선이 1천1백25개인 고화질 TV가 나오기 전까지 TV기술은 베어드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TV의 상업화는 1932년 BBC방송사에 의해 처음 이뤄졌다.

당시 베어드의 기술로 만든 TV는 2만여 세트 팔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컬러TV의 실용화는 미국이 앞섰다.

1953년 개발돼 이듬해 정식 방송에 들어갔다.

한편 TV는 물질만능주의를 본격화한 발명품으로도 자주 거론된다.

TV가 보급되던 당시 미국과 유럽 가정의 모습도 60년대 TV가 등장하던 때 우리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을 정자 등에 모여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던 주민들이 너나 없이 TV앞에 매달리고 문명의 편리함에 눈떠감에 따라 공동체의식이 급격히 허물어져 갔다.

TV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영국의 더 타임스 등 세계 굴지의 언론이 선정한 '20세기 10대 발명품' 에 빠짐없이 꼽히고 있다.

현재 TV는 전세계적으로 약 6억5백만대 보급돼 베어드가 꿈꾸었던 '안방극장' 이 실현된 셈이다.

TV방송국은 미국에서만도 1천5백여 곳을 헤아리며 송출방식도 팔 (PAL).세캄 (SECAM) 등 15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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