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가 말려도 일 즐거워…베트남 95세 인력거꾼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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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아직 두 다리에 힘이 남아 있는데 자식들 신세를 왜 집니까. " 백수 (白壽)가 지척인 나이에 베트남의 전통 세발 인력거 '시클로' 를 몰고 하루 10시간씩 일하며 복잡한 거리를 누비는 한 베트남 노인의 노익장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AP통신이 최근 휴먼 스토리로 보도한 올해 95세의 하노이 인력거꾼 팜 쾅 지앙 노인은 지난 35년간 한번도 의사를 찾아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을 자랑하고 있다.

이 덕분에 그는 요즘도 교통이 혼잡하고 매연이 가득한 하노이 시가를 하루 평균 40㎞씩 돌아다니며 손님을 실어나른다.

그는 네번의 결혼을 통해 72세의 장남에서 30세의 막내까지 12명의 자녀와 1백1명의 손자.증손자를 두고 있다. 가위 중대 (中隊) 규모다.

별로 아쉬울 것 없는 그가 아직도 시클로를 모는 이유는 한가지, 일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자손들이 "이제 그만 쉬시라" 며 시클로를 팔아버린 것이 벌써 세차례다. 팜 쾅 지앙은 그 때마다 "일하겠다는 것도 죄냐" 며 꾸짖고는 시클로를 되찾아왔다.

77세가 되던 지난 81년에는 베트남 남부 호치민시에서 북부 하노이시에 이르는 1천7백㎞ 거리를 2달여 동안 시클로를 몰고 종단 (縱斷) 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장수와 건강의 비결에 대해 그는 "항상 긍정적이고 행복한 마음을 가져라. 당신을 괴롭힐 수 있는 모든 것을 마음에서 지워 버려라" 고 말한다.

오전 5시 운동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는 샤워와 아침식사를 마친 뒤 오전 8시 중앙역으로 가 손님을 기다린다. 점심은 길거리 조그만 식당에서 해결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오후 6시. 젊은이들로서도 만만치 않은 격무지만 팜 쾅 지앙은 일이 즐거울 뿐이다.

그는 때때로 시클로 통행금지 구역에 들어섰다가 경찰에게 붙잡히기도 하지만 가슴에 매단 신분증을 본 경찰이 씩 웃으며 그냥 보내줄 정도로 베트남의 명사 (名士)가 됐다.

젊은 시절 군과 국영기업에서 근무했던 팜 쾅 지앙이 시클로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70세를 훌쩍 넘겨버린 지난 78년. 베트남전의 포화 (砲火) 속에 숨진 4명의 친자녀를 대신해 3명의 베트남전 고아를 입양한 그에게 하노이 시정부는 시클로를 선물하고 인근 식료품 가게에 맥주를 배달하는 일을 맡겼다.

80년대 중반 베트남에 자본주의 경제가 몰려올 무렵 맥주 배달을 그만두고 '손님 배달' 로 업 (業) 을 바꾼 그에게 은퇴란 곧 이 세상 떠나는 날을 의미한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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