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470.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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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제10장 대박

"적게는 삼천, 많게는 오천쯤 될 테지요. " "왜 이천만원이나 차이가 나요?" "그러니까 합작한 네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야 결판난다지 않았습니까. " "그 자리에서 결정하기에 따라 오천까지도 분배받을 수 있겠네요. " "그렇다니까요. " 희숙이가 방긋이 웃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남녀를 불문하고 지금의 희숙처럼 오로지 방긋이 웃고 있는 사람과 만난 적이 별로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처럼 해맑게 웃을 수 있는 희숙이란 여자가 그 순간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의 집요함에 속절없이 걸려들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깥 현관에서도 충분히 들을 수 있을 만큼의 강도로 울었던 것도, 한철규를 방으로 유인한 것도 자신이 겨냥했었던 대답을 기어코 듣고 말아야겠다는 속셈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몰랐다.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한 여자란 생각이 뒤통수를 쳤다.

"지독한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화가 나시더라도 밉게만 보지 마세요. 봉환씨는 고아 출신이고 저도 봉환씨와 결혼하면서부터 친정식구들과 사이가 벌어지고 말았어요. 친정에서 봉환씨를 별로라고 여겼거든요. 그렇게 되니까 외롭긴 둘 다 마찬가지가 돼 버렸어요. 게다가 신혼 초부터 덜컥 임신까지 하고 나니까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네요. 결혼식 비용 쓰고 전세방 얻고 나니까 통장에 남아 있는 것이 겨우 이천 정도였어요. 그걸 밑천으로 살아가야 한다니까 생각할수록 눈앞이 캄캄해 오는 거 있지요. 그래서 한선생님이 봉환씨한테 줄 돈이 있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저는 가슴이 두근거려서 한잠도 잘 수 없었어요. 구세주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

그녀가 진솔한 속내를 털어놓을수록 한철규는 점점 곤혹스러웠다. 조금 전에 불쑥 내뱉은 한마디를 거둬들이기는커녕 고쳐 말하기조차 어렵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주문진의 물건을 넘기고 매도금 (賣渡金) 으로 받은 지폐를 네 사람이 둘러앉아 몇날 며칠을 두고 손으로 잡아늘인다 하더라도 오천만원씩의 분배란 가당찮은 우스갯소리였다.

워낙 아금받게 헤집고 들었기에 홧김에 팽개치듯 내뱉은 말에 불과했었는데, 난처하게도 거둬들일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걸려들었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말을 애써 고쳐야 하겠다는 초조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난처하게 되면, 자신의 몫을 뚝 떼어서 박봉환에게 줘 버려도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합작을 하시던 두 분이 왜 헤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절친한 친구 사이인데도 서로 잡아먹지 못해서 눈이 시뻘겋고, 일가친척 간에도 사기쳐먹지 못해서 앙앙거리는 세상에 봉환씨에게 줄 돈이 있다고 안면도까지 찾아오신 한선생님이야말로 보배 같은 분이란 생각이 드네요. 아니면 딴 세상에서 오신 분이든가. "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한가지뿐이지, 대단한 걸 품고 있는 주제가 못됩니다. " "약속 한가지만이라도 올바르게 지키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어요. 그런 줄도 모르고 봉환씨가 한때 선생님 곁을 떠났다면 눈이 멀었기 때문이겠지요. "

이젠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고스란히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복도에서 인기척이 있었고, 그녀는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벌써 아침 6시였다. 시골 장터를 돌아다닐 때라면 장터 변두리에서 해장국으로 창자를 채우고 있을 시각이었다. 그녀를 데리고 여관 현관을 나서는데, 접수실에 있던 종업원이 후다닥 일어나 현관을 나서서 한철규에게 굽신 작별인사를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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