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국제換市 똑바로 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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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제 외환시장이 심상치 않다.

일본은행은 지난 3주간 2백50억달러 가까운 외환보유액을 헐어 시장개입에 나섰다.

유로화는 사상 최저치를 거듭 경신 중이다.

국제시장이 우려해온 위안 (元) 화 평가절하설을 중국 통화당국이 슬슬 흘리는 상황이다.

세계 주요 연구소들의 환율예측은 그야말로 들쭉날쭉이다.

아예 환율예측을 포기한 연구소들도 적지 않다.

외환딜러들은 "폭풍 전야의 고요" 라며 몸을 움츠리고 있다.

지금 상황을 85년 9월에 빗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당시 미국은 '강한 달러' 신봉자인 에드워드 리건을 퇴진시키고 합리적인 제임스 베커를 재무장관에 앉혔다.

일본도 막강 정치가인 다케시타 노보루 (竹下登) 를 대장상에 임명했다.

이들이 곧바로 들고나온 것이 '달러의 질서있는 하락' 을 내건 이른바 플라자 합의. 달러당 2백40엔이던 환율은 3개월 만에 달러당 2백엔대로 곤두박질했고, 1년반 뒤에는 1백50엔대까지 주저앉았다.

공교롭게도 최근 미.일 금융사령탑이 로런스 서머스 재무장관과 구로다 하루히코 (黑田東彦.54) 재무관으로 얼굴이 바뀌었다.

이들은 취임 직후부터 엇갈리는 발언으로 국제금융시장을 긴장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위안화 평가절하까지 가세하면 국제외환시장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돼 있다.

한국이 급속한 환율변동으로 외환위기를 체험한 것은 불과 1년7개월 전. 세계 최대의 채권국인 일본 금융기관들도 그 당시 브라질보다 더 높은 가산금리 (재팬 프리미엄) 를 주고 달러를 빌리는 수모를 당했다.

환율변동에 중립적인 경제시스템은 이제 발등에 불이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액을 높이 쌓고 금융기관은 장기차입과 단기대출의 오차, 즉 미스 매칭을 최대한 좁히려고 안간힘이다.

기업들도 해외진출을 강화해 환차손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환율에 목을 매는 천수답 (天水畓) 식 체질개선은 한국쪽이 더 절실하다.

그런데 거센 외풍이 다시 불어닥칠 조짐인데도 한국만 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이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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